[한마당-정진영] 박원순식 철거 기사의 사진
‘건축물을 부숴 없앤다’는 뜻의 철거는 한국영화에 자주 활용되는 소재다. 철거 장면은 리얼리티를 바탕으로 하는 데다 강자에 대한 약자의 온정적 공감까지 자아내 관객의 눈길을 끈다. ‘상계동 올림픽’ ‘상암동 월드컵’ ‘사당동 더하기’ 같은 다큐멘터리는 말할 것도 없고 상업영화에서도 널리 쓰이는 아이템이다. ‘비열한 거리’ ‘1번가의 기적’ ‘똥파리’ ‘파주’ ‘강남 1970’ 등 지난 몇 년간 상영된 작품에서 철거는 줄거리를 잇는 주요 맥락의 하나였다. 특히 지난해 개봉된 ‘소수의견’은 2009년 1월 빚어진 용산참사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주목을 끌었다. 세입자들이 점거하던 남일당 건물 철거과정에서 6명이 사망하고 23명이 부상당한 비극을 사실적으로 그렸다는 평을 받았다.

용산참사의 경우 공권력의 폭력성이 논란이 됐지만 보통의 철거과정에서는 용역업체 직원들의 불법이 난무한다. ‘철거=용역깡패=폭력’의 등식이 일반적이다. 적정한 보상을 요구하며 생존권을 주장하는 철거민들과 돈을 받고 이들을 내쫓으려는 용역들이 맞부딪치면서 피해가 속출하는 것이다. 서울 등 대도시의 재건축·재개발이나 도시정비사업에서는 되풀이되는 현안이다.

서울시가 기존과는 완전히 다른 방안을 29일 내놨다. 주민들과 사전 협의를 하지 않고는 강제철거와 퇴거를 못하도록 규정을 바꿨다. 박원순 시장은 이날 강제철거 예방 종합대책을 발표하면서 “앞으로 서울 하늘 아래선 강제철거 같은 불법 행위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다”며 “사람은 결코 철거대상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무엇보다 용역들의 불법폭력은 철저히 차단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반론도 만만찮다. 법률적 근거가 아닌 조례 등 시의 행정 권한만으로 과연 실효를 거둘 수 있겠느냐는 지적이다. 다분히 박 시장의 정치적 행보를 위한 ‘쇼’라고 폄훼하기도 한다.

서울시가 확약한 대로 100% 관철될지 불투명한 게 사실이다. 철거민의 위법 행위는 왜 문제 삼지 않느냐는 논리도 적지 않다. 그러나 철거 때면 당연한 듯 따라붙는 인권침해와 이로 인한 사회적 갈등은 이제 근절돼야 할 때가 됐다. 박원순식 철거가 나름대로 의미가 있는 이유다.

정진영 논설위원, 그래픽=이영은 기자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