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김정란 <9> 회사에 재정 위기 …“남편·신용 지키자” 최선의 선택

출판사에 빌려준 백지어음 부도… “남편 실수 용서하라” 하나님 음성

[역경의 열매] 김정란  <9> 회사에 재정 위기 …“남편·신용 지키자” 최선의 선택 기사의 사진
2013년 여름 케냐 단기선교 현장에서 남편 정용주 온누리교회 안수집사와 함께한 김정란 권사. 2005년 어음사건 이후 부부는 교회 공동체 및 선교 사역에 힘쓰고 있다.
2005년을 생각하면 하나님의 보살핌에 그저 감사할 뿐이다. 당시는 참고서 시장이 호황을 누리던 때로 B출판사는 연간 수십억 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었다. 경쟁사인 A출판사에서 가정 학습지를 개발해 학생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자 B출판사도 이에 도전장을 내고 단시간에 급성장했다. 그러자 B출판사 사장은 비생산적인 일에까지 욕심을 부리기 시작했다. 사업할 때 욕심을 조절하지 못하면 쉽게 돈을 잃을 수 있다. 아니나 다를까. B출판사가 자금난에 시달린다는 소문과 함께 곧 부도가 날 것이라는 얘기가 업계에 돌기 시작했다.

어느 날 B출판사의 부장이 술자리를 마련하고는 남편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워낙 착하고 거절을 잘 못하는 성격이라 남편은 부장의 다급한 소리에 백지어음을 덜컥 빌려줬다. 그리고 얼마 후 사건이 터졌다. B출판사는 남편에게 한 것처럼 여기저기 총판에서 어음을 빌려 모두 할인을 한 다음 부도를 내버린 것이다. 그 일로 우리 회사는 큰 타격을 입게 됐다. 선 어음과 빌려준 백지어음을 합쳐 최종적으로 결제해야 할 금액이 10억원을 넘었다. 당장 돌아오는 어음들을 막지 못하면 회사가 하루아침에 무너질 상황이었다.

잘 아는 변호사를 찾아가 이 일을 의논했다. 변호사는 세 가지 방법을 제시했다. “첫 번째 방법은 남편을 고소하는 겁니다. 사모님이 대표이사인 상태에서 회사 어음을 허락도 없이 남에게 줬으니 고소할 수 있습니다.” 당시 나는 서류상 대표이사였고, 남편은 영업 파트를 담당하며 대외적으로 사장 역할을 하고 있었다. 곰곰이 생각해봤다. 남편을 고소하면 돌아오는 어음을 막을 책임은 면할 수 있다. 하지만 이혼을 감수해야 한다.

“두 번째 방법은 부도를 내는 겁니다.” 사업에서 신용은 가장 중요한 덕목인데, 이 방법을 택하면 사업을 재개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다 못하겠으면 세 번째 방법은 어음이 돌아올 때마다 결제하는 것입니다.” 어느 것 하나 쉬운 게 없었다.

하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기도로 지혜를 간구했다. 그리고 내린 결론은 세 번째 방법. 남편과 이혼하고 사업가로서의 신용을 저버리는 것은 돈을 따르는 것이다. 하나님께선 그것을 원치 않으실 게 분명하다. 나는 남편과 신용을 지키기로 마음먹었다. 그것이 최상의 선택이었다.

하지만 분노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우리 부부는 눈만 마주치면 큰소리로 싸웠다. 서로 상처 주는 말을 주고받으며 지칠대로 지쳐있었다. 남편은 자책하며 술을 마셨고, 나는 그런 남편에게 원망을 쏟아냈다. 남편을 미워하는 내 마음은 이미 지옥이었다.

그렇게 괴로운 시간을 보내던 어느날 새벽이었다. 비몽사몽간에 분명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 “딸아, 네게 지금까지 많은 물질과 사랑을 주었건만 너는 남편의 작은 실수로 그토록 마음 아파하느냐. 다 내려놓아라. 남편도 용서하지 못하면서 누굴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느냐.” 잠에서 깨어났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남편의 피폐해진 얼굴이었다. 긍휼한 마음이 생겼다. 그때 주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골 3:23)

정리=노희경 기자 hkro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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