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배병우] 현금의 저주와 5만원권 기사의 사진
요즘 한국은행은 2009년 5만원 지폐를 발행키로 한 것을 후회하고 있을지 모른다. 한은은 당시 1000원을 1원으로 하는 화폐단위 개혁이 정부 반대로 좌절되자 10만원 수표 제조 및 취급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다는 이유 등을 들며 5만원권 발행을 결정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지폐, 특히 고액권을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으면서 한은의 처지가 편치 않다. 무엇보다 지폐 폐지론자들이 세계 최정상급 경제학자라는 점에서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800년간 66개국의 금융위기 사례를 분석한 ‘이번엔 다르다’라는 저서로 널리 알려진 케네스 로고프 하버드대 교수가 선봉장이다. 로고프 교수는 최근 출간한 ‘현금의 저주(The Curse of Cash)’에서 현금을 사회악의 근원으로 간주한다. 전 세계 실물화폐의 70∼80%를 차지하는 고액권이 주로 지하경제에서 유통되면서 조세회피, 범죄, 부패를 용이하게 한다는 것이다. 마이너스 금리 정책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서도 지폐 폐지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벤 버냉키 전 연준의장은 이 책을 “매혹적이고 중요하다”고 칭찬했다. 로런스 서머스 전 미 재무장관도 지난 2월 워싱턴포스트 기고문에서 100달러 지폐 폐지론을 편 바 있다. 유럽연합(EU)은 이미 500유로 지폐를 2018년부터 발행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시중에 풀린 5만원권 중 절반 정도만 한은으로 되돌아온다. 1만원권 등 다른 지폐 회수율의 절반 수준이다. 회수되지 않은 5만원권 상당수가 지하경제로 유입됐다고 추정된다. 지난해 국감자료에서 한은은 지난달 말부터 시행에 들어간 김영란법(부정청탁금지법)으로 투명성이 높아지면 5만원권 회수율이 높아질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접대와 뇌물이 더욱 음성화돼 현금 수요가 늘면서 5만원권을 보기 힘들 것이라는 반론도 강하다. ‘현금 없는 경제’로의 전환이 가속화되는 가운데 한은의 5만원권 고민이 더욱 깊어지게 됐다.

글=배병우 논설위원, 삽화=이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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