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 뉴스] 흑역사, ‘국정원 스토리’가 다시 뜬다 기사의 사진
국가정보원에 대해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갑자기 늘어난 걸까요? 최근 국가정보원을 다룬 책과 만화, 영화 등이 잇달아 나오고 있습니다. ‘조국과 민족’은 정보기관의 고문기술자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첩보물 형식의 만화입니다. 웹툰 플랫폼인 레진코믹스에서 인기리에 연재됐고, 최근 상·하 두 권의 만화책으로 출간됐습니다. 영화 판권 계약이 완료돼 내년 영화로도 나올 예정입니다. 13일에는 국정원의 간첩조작 사건들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자백’이 개봉합니다. 지금 시사회 중인데 관객들 반응이 뜨겁습니다. 국정원의 역사와 현실, 문제, 개혁 방안 등을 종합적으로 담아낸 책 ‘시크릿파일 국정원’도 출판됐습니다.

이들 작품은 국정원이란 조직과 요원들을 어떤 이야기를 전개하기 위한 소재나 배경 정도로 사용하고 마는 게 아닙니다. 국정원 자체가 이야기의 중심이라는 공통점을 보입니다.

국정원이 뉴스의 초점이 되는 경우는 더러 있습니다. 그러나 문화 콘텐츠의 한 주제로 부상하는 최근의 현상은 분명 이례적입니다. 특히 웹툰이나 영화 같은 대중적인 장르가 국정원을 정면으로 다루리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들이 지금 국정원에 주목하는 이유가 뭘까요? 단순한 우연일까요? 각각의 작품을 들여다보면 궁금증이 풀릴 수도 있습니다.

‘조국과 민족’은 국정원 기관원 이야기입니다. 1987년 공안정국 당시의 정보기관을 무대로 고문기술자 박도훈과 그의 상사 장 실장, 동료 김대한 등을 등장시켜 기관원들의 일상과 내면을 그려냈습니다. 그들은 조작과 고문에 참여하면서 자신들의 행위가 애국이고 정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악행을 정당화해주던 조국이나 민족이라는 명분은 무고한 시민들뿐만 아니라 기관원들 자신마저도 희생시키고 만다는 걸 이 작품을 보여줍니다.

‘자백’은 국정원 희생자 이야기입니다. 탈북자 출신의 서울시 공무원이었던 유우성씨 간첩조작 사건을 중심으로 국정원의 과거 간첩조작 사건을 100분짜리 다큐멘터리 영화에 담았습니다. 이 영화는 국정원의 간첩 조작이 과거의 일이 아니라 현재도 지속되고 있음을 섬뜩하게 보여줍니다. 영화 속에서 최승호 감독(뉴스타파 PD)은 조작 사건에 가담한 국정원, 검찰, 경찰 관련자들을 추적해 “왜 조작했느냐?” “왜 묵인했느냐?” “왜 사과하지 않느냐?”고 집요하게 질문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답변은 비슷합니다. “말할 수 없습니다.” 또는 “모릅니다.”

최근 개봉한 김기덕 감독의 극영화 ‘그물’에서도 남쪽으로 표류한 북한 어부를 간첩으로 몰아가는 정부요원이 나옵니다.

‘시크릿파일 국정원’은 20여년 국정원을 취재해온 전직 기자가 쓴 국정원 해부서입니다. 역대 국정원장들과 요원들의 증언과 방대한 자료 분석을 바탕으로 베일에 싸여 있던 국정원의 조직, 인사, 활동, 예산 등 전모를 밝혀냈습니다. “5000명 넘는 인원이 연간 1조원 넘는 예산을 쓴다” “노무현정부 말기 1000억대 미만으로 떨어진 국정원 예비비가 이명박정부 출범 이후 2000억∼3000억원대로 껑충 뛰었음을 알 수 있다” “국정원은 2008년 정보위 결산보고 당시 2007년 아프간 인질 석방 비용으로 2000만 달러를 사용했다고 보고했다” 등 흥미로운 내용이 많습니다. 또 중앙정보부에서 시작된 국정원의 역사와 주요 사건을 되짚으면서 정권에 충성했던 흑역사를 고발하고, 국가정보기관이라는 본연의 임무로 돌아갈 것을 충고합니다.

‘시크릿파일 국정원’의 저자 김당에 따르면 그동안 민간에서 정보기관에 접근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습니다. 국정원을 대상으로 한 학술적 연구나 저술조차 쉽지 않았던 게 사실입니다. 김당은 그 이유로 정권 차원에서 접근을 제약했던 면이 있었고, 신뢰성 있는 자료를 구하기도 어려웠기 때문이라고 분석합니다.

책만 봐도 정보기관을 전면적으로 다룬 경우로는 20여년 전 나온 ‘남산의 부장들’(김충식), ‘국가안전기획부’(조갑제) 등이 꼽힐 정도입니다. 정보기관에 대해 관심을 가진 사람은 주로 언론인이나 정치학자로 한정됐고, 관심 분야도 정보기관의 국내 정치 개입 문제였다는 게 김당의 분석입니다.

이런 사정에 비춰볼 때 최근 새로 등장하는 국정원 이야기들에는 몇 가지 변화가 발견됩니다. 국정원을 주제로 한 웹툰이나 영화의 출현은 주로 피해자의 고백이라는 논픽션에 국한됐던 국정원 이야기가 픽션 장르로 다변화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또 ‘조국과 민족’의 작가 강태진(44)의 경우처럼 그 시대를 직접 경험해보지 못한 작가들도 국정원을 한국 현대사의 어두운 이야기로 주시하고 있음을 알려줍니다.

세 작품은 형식은 제각각이지만 내용 면에서는 국정원을 비판한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 간첩조작 사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도 공히 확인됩니다.

그런데 왜 ‘지금’ ‘국정원’일까요? ‘시크릿파일 국정원’을 낸 메디치 출판사의 김현종 대표는 “아무래도 문제가 많으니까 여기저기서 얘기가 터져 나오는 것 아니겠냐”면서 “댓글 사건, 유오성 사건, 북한식당 종업원 집단 탈북 사건 등을 보면서 보통 시민들조차 국정원을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게 된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글=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 그래픽=안지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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