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전정희] 지식 없는 지옥2 기사의 사진
‘이 세대는 우리가 그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바울에 따르면 그것은 부패의 상태다. 그러므로 이 세대에 순응하는 것은 이 세대의 부패에 참여하는 것을 의미한다.’

히틀러에 저항한 독일 신학자 폴 틸리히 설교집 내용의 한 부분이다. ‘순응하지 말라’는 제목의 설교다. 틸리히는 이 설교에서 로마서 12장 2절 말씀을 본문으로 삼았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 ‘이 세대의 부패에 참여하지 말라.’ 바울이나 틸리히의 ‘이 세대’가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거슬렀다는 의미다.

2016년 9월 28일 대한민국은 ‘이 세대’를 향해 부패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김영란법이다. ‘이 세대 크리스천’이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을 분별하지 못했다는 얘기다. 교회가 앞서 김영란법 내용을 실천했어야 했다. 교계 지도자들은 부패에 대한 바울의 책망을 알고 있었고 또 그러한 말씀 속에 살아왔으면서도 세상을 향해 선지자의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 세대(This eon)’라고 했다. ‘이 세상(This World)’이라 하지 않으셨다. 이 세대가 부패했으니 ‘본받지 말라(Do not be conformed)’이다. 여기서 ‘본받다’의 원뜻은 ‘순응하다’이다. 즉 ‘순응하지 말라’이다.

틸리히는 순응하지 말아야 할 대상으로 가정, 학교, 또래, 문화, 자신, 국가 등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것들을 열거했다. 선해 보이나 실은 부패한 이 세대에 속해 있다는 것이다. 틸리히의 핵심은 정작 그 너머에 있다. ‘교회에 순응하지 말라’이다. 하지만 교회는 늘 ‘순종하라’고 가르친다. 틸리히는 종교적 순응주의가 예수마저도 가장 효과적으로 위협해 죽음으로 몰고 갔다고 말한다.

틸리히는 파시즘에 불순응했다. 파시즘을 옹호하는 교회에 불순응했다. 우리는 일본 제국주의에 불순응했다. 개화 기독교인 김구는 물론이려니와 배재학당 출신 이승만도 임시망명정부를 만들어 일제에 불순응했다. 이승만은 조선의 부패를 본받지 않기 위해 고종황제 폐위를 주장하다 20대 7년여를 한성감옥에서 보내기도 했다. 말씀대로 행한 것이다. 말년 부패만 하지 않았더라면 훌륭한 초대 대통령이었다.

한국적 체면문화는 부패를 낳았다. 성리학에서 비롯된 체면에 갇힌 우리는 상피의 예로 허례허식을 키웠다. 친인척, 동향, 학맥, 계층의 동질감을 유지하기 위해 청송과 시관 따위를 피하며 유교적 악습을 이어갔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외치곤 했다. 이 순응주의 사고로 역사 수업도 왜곡됐다. 일제 강점기는 조선 양반과 관료의 부패가 원인이라고 솔직하게 가르치지 않았다. 일본이라는 공공의 적만 강조할 뿐이다.

개화기 외국 선교사들 눈에 비친 조선은 신분 차별을 기반으로 한 우상의 국가였다. 죽은 자를 위한 제삿밥이 산 자를 먹였다. 복상 문제로 16년을 싸우는 예송논쟁과 같은 예론으로 권력 다툼을 했다. 성리학 이념에 순치된 9명의 무지한 상민과 노비는 양반 한 명에 휘둘렸다.

한데 19세기 말 조선의 종교개혁이 시작됐다. 복음이 들어왔고 언문성경이 보급되면서 문해 능력이 급격히 향상됐다. 복음 지식을 접한 백성은 유교적 순응주의를 거부했다. ‘이 세상’이 아니라 ‘이 세대’가 악함을 알기 시작했다. 그들은 저항했다. 그러자 조선이 개혁됐다. 하나님의 선함을 알려는 지식의 힘이었다.

그리고 130여년이 지났다. 문득 돌아보니 한국 교회가 식탐에 빠졌다. 타락한 이스라엘처럼 세상 사람들의 비난을 받고 있다. 호텔 조찬기도모임으로 상징되는 제사장의 식탐은 오늘 한국 교회의 현실을 대변한다.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 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호 4:6)’. 하나님 향한 지식을 다시 채우라. 타락한 제사장에 순응하지 말라. 밥값은 3만원 이하다. 전정희 종교국 부국장 jhje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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