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폐장 38년 논란 결론내자 <1부>] 로봇팔이 핵물질 분리 척척… 우라늄 활용률 100배 높인다 기사의 사진
한국원자력연구원 소속 연구원들이 파이로프로세싱을 연구하는 프라이드(PRIDE) 시설 내에서 로봇 팔을 작동해 모의 사용후핵연료를 다루고 있다. 파이로프로세싱은 고온(500∼650도)에서 사용후핵연료 내 각종 핵물질을 비롯한 원소들을 분리해 내는 기술로 우라늄의 자원활용률을 100배 정도 높여준다. 한국원자력연구원 제공

이전이미지다음이미지

지난 5일 찾은 대전 한국원자력연구원 내 프라이드(PRIDE) 시설. 녹색 실험복을 입은 연구원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이들이 손으로 조작기를 움직이자 폴리카보네이트 소재 창문 너머로 로봇 팔이 반응하며 모의 사용후핵연료를 들어 올렸다. 연구원들은 목에 방사능 피폭량을 측정할 수 있는 선량계를 착용하고 있었다.

PRIDE는 파이로프로세싱의 모든 공정을 원격으로 한번에 시험할 수 있는 시설이다. 파이로프로세싱은 고온(500∼650도)에서 사용후핵연료 내 각종 핵물질을 비롯한 원소들을 분리해 내는 기술이다. 공정 특성상 플루토늄을 단독으로 회수할 수 없어 핵연료의 평화적 활용이 가능하다.

게다가 파이로프로세싱은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분장 면적을 100분의 1 수준으로 줄일 수 있어 ‘꿈의 기술’로 불린다. 고준위 폐기물 처분장의 면적은 폐기물에서 발생하는 열량에 좌우된다. 열이 많이 발생하는 폐기물일수록 더 넓은 면적이 필요하다. 폐기물을 담는 용기 간 간격이 더 필요해지기 때문이다. 사용후핵연료에는 초우라늄원소와 같은 반감기가 긴 원소가 포함돼 있어 독성이 자연 상태로 환원될 때까지 30만년 이상의 기간이 소요된다. 세슘(Cs)과 스트론튬(Sr) 등 고온을 내는 원소들은 넓은 면적의 처분장을 필요하게 만든다.

파이로프로세싱을 통하면 우라늄뿐만 아니라 이 같은 고독성·고방열 원소를 분리할 수 있다. 고독성 원소들은 원자로에서 연소시키는 게 가능하고, 고방열 원소들은 따로 저장한 뒤 처분하면 된다. 고준위 폐기물의 부피를 줄이고, 최종처분장의 면적과 독성을 감소시킬 수 있다는 설명이다.

또 파이로프로세싱은 우라늄의 자원활용률을 100배 정도 높여준다. 특히 국내 경수로 원자로에서 나오는 사용후핵연료에는 다시 쓸 수 있는 우라늄이 들어 있다.

우리나라는 1997년 연구를 시작해 현재는 세계적 수준의 파이로프로세싱 기술 수준을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 결과물인 PRIDE는 독창적이면서도 현존하는 세계 최고 수준의 파이로 연구 핵심시설로 평가된다. 이 때문에 세계 각국은 물론이고 국제원자력기구(IAEA)까지 이 시설을 방문하는 등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다고 한다.

PRIDE는 2009년 건설에 착수한 뒤 총 330억원이 투입됐다. 작년 말 가동에 들어갔다. 시설은 1층 공기 셀과 2∼3층이 통합된 대형 아르곤(Ar) 셀로 이뤄졌다. 총면적 2800㎥, 연간 10t 처리 규모로 설계된 이 시설에서는 모의 사용후핵연료의 전처리부터 염폐기물 재생까지 파이로프로세싱의 전 과정을 연계해 시험할 수 있다.

PRIDE 내 모의 사용후핵연료를 다루는 공정은 로봇 팔이 직접 진행하고 있었다. 2층에 설치된 로봇 팔은 모두 34개로 팔 하나당 25㎏의 무게를 견딜 수 있다. 시설 내부는 비활성 기체인 아르곤으로 가득 차 있고, 철판으로 실험실과 격리돼 있었다. 아르곤은 모의 사용후핵연료에 포함된 원료물질의 반응을 막고 장비 및 장치들의 부식을 막는 역할을 한다. 이날 실험실에는 4명의 연구원이 눈에 띄었지만 작업이 바쁘게 돌아갈 때는 20여명의 연구원들이 상주하기도 한다.

현재 PRIDE에서는 감손 우라늄으로 만든 모의 사용후핵연료로 실험이 이뤄지고 있다. 감손 우라늄은 우라늄235의 함유량이 자연 상태보다도 낮다. 핵무기에 사용되는 고농축 우라늄과 구분되고 연구실험용으로 쓰인다. 파이로프로세싱 기술 완성을 위한 테스트 베드 역할을 감손 우라늄이 맡고 있는 셈이다. 이에 대해 허진목 원자력연구원 핵주기공정기술개발부 책임연구원은 “내년부터는 실제 사용후핵연료를 사용한 실험에 들어갈 예정”이라면서도 “다만 국민적 합의가 먼저 이뤄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동안은 한·미 원자력협정 때문에 실제 사용후핵연료를 사용한 연구가 불가능했지만 지난해 말 협정이 개정됨에 따라 자율적으로 실험을 진행할 수 있게 됐다.

원자력연구원은 미국과 공동으로 실제 사용후핵연료의 실험자료를 확보한 뒤 2020년까지 파이로프로세싱의 기술성, 경제성을 검증할 예정이다. 검증을 통과하고 국민 여론이 동의한다면 2025년에는 파이로프로세싱 실용화 시설을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김종경 원자력연구원장은 “파이로프로세싱은 사용후핵연료 관리 문제를 해결하고 원자력 발전의 지속 가능성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킬 수 있는 미래형 신기술”이라며 “PRIDE를 통해 독창적인 파이로 원천 기술을 개발하고 세계 파이로 연구개발을 선도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나중에 실용화될 파이로프로세싱 시설의 안정성은 어느 정도일까. 원자력연구원에 따르면 파이로 운전은 두께 1m가 넘는 콘크리트 구조물 내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사고가 발생하더라도 방사성 물질을 시설 내에 격리할 수 있다. 아울러 시설 내부는 대기압보다 낮은 압력을 형성하고 있어 콘크리트 구조물이 손상되더라도 방사성 물질이 외부로 유출되지 않는다. 아르곤 가스를 이용한 불활성 환경에서는 화재 및 폭발 가능성도 없다.

대전=유성열 기자 nukuva@kmib.co.kr, 그래픽=전진이 기자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