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서윤경] 메밀밭과 호밀밭 기사의 사진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소설 ‘메밀꽃 필 무렵’ 중 한 대목이다. 정부세종청사에도 메밀밭이 있다. 달빛을 받은 메밀꽃과 허수아비는 삭막한 세종청사에서 다소나마 여유를 느끼게 한다. 규모만 무려 10만㎡에 달하는 세종청사 공터에 만들어진 꽃밭이다. 광활한 공터에 잡초만 무성해 미관상 좋지 않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부지를 관리하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청사관리소의 방호계획 등이 끝날 때까지 작물을 심기로 했다”고 말했다. LH가 선택한 첫 작물은 호밀이다. 토양이 척박한 토양에서도 잘 자란다. 그런데 같은 토지에도 결과는 달랐다. 무성히 자라 호밀밭을 이룬 곳이 있는가 하면 잡초에 밀려 싹조차 틔우지 못한 곳도 있었다. 좋은 토양은 이후 메밀밭이 됐다. 나쁜 토양은 여전히 호밀밭이다. 하지만 LH는 계속해서 땅을 갈아 엎어가며 씨를 뿌리고 있다. 비옥한 땅이 되기 위한 과정이다.

최근 국회에서 진행되고 있는 국정감사를 보면 세종청사에 호밀씨를 뿌리고도 싹을 틔우지 못하는 척박한 토양이 떠오른다. 20대 국회 첫 국감임에도 새누리당이 정세균 국회의장의 의사진행을 문제 삼고 보이콧하면서 반쪽 국감으로 시작했다. 이정현 대표의 단식 중단으로 국회는 정상화됐으나 행정부를 견제해야 할 입법부의 기능은 볼 수 없다.

문전옥답(門前沃畓). 문 앞의 비옥한 논이라는 이 말은 ‘재산이 많다’는 뜻이다. 하지만 농가에선 이 말을 농작물이 주인의 발자국 소리를 들으면서 자란다는 뜻으로 쓴다.

이제 국감은 일주일 남았다. 지금까지 국감을 지켜보는 국민들의 마음은 편치 않다. 척박한 땅에서 싹을 틔울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국민들은 고되더라도 씨를 뿌리고 땅을 갈아엎어야 비옥한 땅이 되는 농사꾼의 심정으로 쓴소리를 아끼지 않고 있다. 척박한 땅에서 호밀이 싹을 띄우고 메밀은 꽃을 피울 수 있을까.

글=서윤경 차장, 삽화=이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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