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조영태] 미국은 왜 트럼프에 열광했는가 기사의 사진
미국 대통령을 뽑는 선거 날이 몇 주 남지 않았다. 미국의 대통령이 누가 되는가는 세계 모든 사람의 주요 관심사다. 이번 선거는 공화당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때문에 어느 때보다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트럼프가 공화당 후보 경선에 나설 때부터 그가 내세운 공약과 언행을 보며 세계의 거의 모든 이들은 어떻게 저런 사람이 후보 중 한 명이 됐을까 의아해했다.

그런 생각이 무색하게 트럼프는 당당히 대선 후보가 됐고 본선 경쟁에서도 선전해 왔는데, 지난 주말 과거 음담패설 동영상이 전격 공개되며 사면초가에 몰렸다. 그가 했다는 음담패설을 듣다 보면 미국인은 어떻게 저런 사람을 지지할 수 있었을까 의문이 든다. 여성과 이민자를 비하하고 주한미군 주둔비용을 한국이 다 내야 한다는 등 우리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숱한 발언을 했는데도 아주 많은 미국인이 트럼프를 지지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미국인이 그렇게 비합리적이었나? 그들은 무언가에 홀렸던 것일까?

아니다. 미국인, 그것도 백인 근로자 계층이 트럼프를 열렬하게 지지한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최근 미국의 인구 변동을 알면 미국인의 트럼프 지지 현상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질문을 하나 해보자. 역사적 배경과 정치적 맥락 등을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머리에 바로 떠오르는 답을 하면 된다. “백인, 흑인, 아시안, 히스패닉, 원주민 인디언 중에서 미국의 주인은 누구인가?” 아주 많은 이들이 백인이라고 답했을 것이다. 맞다. 역사적, 정치적, 경제적, 그리고 인구의 수에서도 미국은 백인이 주인인 국가임이 틀림없다. 그런데 만일 여러분이 백인인데 주인으로서 백인의 위치가 도전받고 있다고 느낀다면 어떠할까? 그것도 직장과 이웃에 백인의 수는 줄어드는데 영어도 잘 못하는 이민자, 특히 히스패닉이 그 자리를 점점 차지해 온다면 말이다.

우리 통계청과 같은 미국 인구센서스국은 얼마 전 미국이 깜짝 놀란 통계를 발표했다. 2010년부터 2014년까지 미국에서 약 2000만명이 태어났는데, 그중 절반인 50.2%가 유럽계 백인이 아닌 마이너리티(Minority·소수인종) 부모로부터 출생했고, 2050년부터 2060년 사이에 전체 미국인의 절반 이상이 마이너리티가 될 거라는 예측이었다. 마이너리티의 중심에는 히스패닉이 있다. 전통적으로 히스패닉 인구가 많았던 캘리포니아 텍사스 등만이 아니라 미국의 거의 모든 주에서 히스패닉 인구가 급증하고 있다. 유럽계 백인은 자녀를 1∼2명 낳는 데 비해 히스패닉은 2∼4명씩 출산하고 있으며 멕시코와 중남미에서 20, 30대 인구가 계속 유입되는 중이다.

자녀의 학교는 물론 자신의 일터에서도 히스패닉과 경쟁해야 하는 상황이 일상화돼 간다. 교육 수준이 높고 경제력 있는 백인에게는 값싸고 양질의 노동력을 얻을 수 있기에 이러한 상황이 나쁘지 않다. 하지만 미국인의 상당수를 차지하는 백인 근로자 계층에는 단지 옆집에 히스패닉이 살게 되는 것 이상의 문제다. 생존의 위협으로까지 느껴질 수 있다. 그런데 마이너리티에 대한 의견을 표출하는 것은 정치적으로 대단히 불편한(politically incorrect) 일이어서 불만을 겉으로 드러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백인 근로자들에게 트럼프의 등장과 언행은 그야말로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마고소양(麻姑搔痒·능력을 가진 사람의 도움으로 원하는 것을 얻는 일)이었다.

지난여름 영국에서는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를 결정하는 브렉시트(Brexit) 투표가 있었다. 당시 영국인을 제외한 거의 모든 사람은 설마 영국인들이 EU 탈퇴를 선택하겠냐며 반신반의했었다. 투표함이 열리자 놀랍게도 영국인의 절반 이상이 브렉시트 찬성에 표를 던진 것으로 드러났다. 가장 표면적인 찬성 이유는 바로 늘어나는 이민자에 대한 반감이었다. 영국인, 특히 백인 근로자는 최근 높아지고 있는 실업률과 사회복지비용 부담의 원인을 증가하는 이민자에게서 찾았고, EU 탈퇴가 이민자의 증가를 막아줄 거라고 믿었던 것이다. 미국인이 트럼프에 열광했던 이유도 이와 똑같은 맥락을 갖고 있다. 인구의 변화는 ‘어떻게 저런 사람이…’ 하는 인물을 대통령 후보로 만들고, ‘설마 그런 일이…’ 했던 국민투표 결과를 현실로 바꾸는 힘을 가졌다. 우리도 저출산 고령화에 의해, 외국인 노동력 유입을 통해 거대한 변화의 길에 들어서 있다.

이번 선거에서 미국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트럼프가 사퇴하지 않는 한 많은 미국인이 온갖 문제를 드러낸 그에게 여전히 표를 줄 것이다. 그들에게는 너무나 합리적인 판단이겠지만 세계 질서에도 과연 합리적인 선택일지 의문이 드는 건 필자만이 아닐 테다.

조영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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