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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열며-이광형] 김영란법 즐기기

단출해진 식사, 서로에게 부담 없는 게 장점… 언론과 취재원 사이의 심리적 위축은 문제

[내일을 열며-이광형] 김영란법 즐기기 기사의 사진
김영란법(부정청탁 금지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 시행된 지난달 28일 국립국어원에서 간담회가 열렸다. ‘우리말샘’에 대한 브리핑을 한 후 오찬까지 이어지는 간담회였다. 발표 내용도 내용이지만 솔직히 점심 메뉴가 궁금해서 간담회에 참석했다. 정부서울청사 근처 유명한 면옥집에 갔다. 이 식당에서 문화체육관광부 브리핑 후 여러 번 점심을 먹은 적이 있다. 자리에 앉으면 일단 수육과 전병, 왕만두가 나오고 온면 등으로 식사를 하곤 했다. 어떤 때는 반주를 곁들이기도 했다. ‘접대 받는’ 자리여서 가격이 얼마인지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분명한 것은 3만원은 훨씬 넘는다는 것이다. 새삼스레 메뉴판을 보니 그랬다.

국립국어원의 오찬에서 제공된 음식은 만두전골과 공깃밥이 전부였다. 만두전골은 테이블당 7만6000원짜리 4인분이 나왔다. 공깃밥 1000원까지 합하면 1인당 2만원짜리 점심이었다. 점심 한 끼에 2만원이면 비싼 편인데도 식단이 썰렁해보였다. “먹는 것까지 이렇게 제약을 받아야 하나”라는 마음도 들었지만 남는 음식 없이 먹을 수 있었다.

다음날 화가로 활동하는 국립대 교수와 저녁을 같이 먹었다. 최근 해외에서 한국미술을 알리고 귀국한 얘기도 들을 겸 그의 강남 작업실로 갔다. 단연 화제는 김영란법이었다. 그는 행동요령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파일을 내보이며 불편함을 호소했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근처 추어탕집에 저녁을 먹으러 갔다.

추어탕과 약간의 튀김 세트가 1인당 1만3000원이었다. 2인분에 막걸리 두 병을 시켜 총 3만2000원이 나왔다. 1인당 3만원 이하이고 한적한 동네의 식당이어서 보는 이도 없었지만 더치페이를 했다. “세상이 어쩌다 이렇게 삭막하게 됐나”라는 얘기도 나왔지만 마음은 홀가분해졌다.

이후 점심 간담회는 대부분 간단한 식단으로 마련됐다. 간혹 있던 저녁 간담회는 아예 없어졌다. 취재원이든 언론이든 당분간 시범케이스에 걸리지 않기 위해 무조건 몸을 사려야 하고 웬만한 모임은 하지 말아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식단이 단출해지니 과식을 하지 않아서 좋고 저녁 모임이 없어지니 개인시간이 많이 생겨 좋은 점도 있다. 이를 즐기면 된다.

하지만 불편함을 호소하는 취재원도 많다. 꼭 대가를 바라고 하는 접대가 아니라 인간적인 관계로 밥 한 끼 먹는 것도 눈치를 봐야 하는 게 씁쓸하다는 것이다. 또 홍보를 위해서는 간담회가 필요한데 법에 저촉되지 않는 선에서 하더라도 뭔가 찝찝해서 포기한다는 것이다.

기자에게 주어지던 몇 가지 편의가 없어져 아쉽지만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 밥 한 그릇 얻어먹고 기사를 써 주지 못하면 미안했던 마음을 이제 더 이상 갖지 않아도 되겠다. 기사 수정을 요청하는 민원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겠다. 전시나 공연 티켓을 구해달라는 부탁도 이제 그럴 능력이 없으니 신경 쓰지 않아도 되겠다. 밥 먹자는 취재원이 없으니 개인 삶의 스케줄을 재조정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취재원과 소통이 어려워지니 정보 제공에도 한계가 생기는 건 사실이다. 웬만하면 만남 자체를 꺼려하니 심층취재가 쉽지 않다. 반드시 밥을 먹지 않고도 취재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하지만 3만원 밥값이 문제가 아니라 언론과 취재원 사이에 형성된 심리적인 위축이 문제다. 취재가 원활하지 못하면 국민들의 알권리도 위축될 수밖에 없다. 얻는 것은 무엇이고 잃는 것은 무엇인지 김영란법이 고려해야 할 사항들이다.

이광형 문화전문기자 gh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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