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히스토리] 절대 강자 없는 AI… 양보없는 ‘왕좌’ 전쟁 기사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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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다 피차이 구글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4일 앞으로 10년은 ‘인공지능(AI) 퍼스트’ 시대가 될 것이라고 선언했다. 동시에 지난 10년을 이어온 ‘모바일 퍼스트’ 시대가 저물고 있다고 진단했다. 구글은 이날 스마트폰 픽셀을 비롯해 5개의 신제품을 공개했다. 신제품을 공개하는 자리에서 AI 시대를 천명했다. 결국 신제품이 AI를 위한 디바이스라는 점을 명확히 한 셈이다.

AI 수직계열화 꿈꾸는 구글

픽셀은 구글이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모두 설계, 제작한 스마트폰이다. 애플 아이폰과 대척점에 있는 제품이다. 구글은 이전에 넥서스라는 브랜드로 스마트폰 사업에 참여했다. 넥서스의 목적은 안드로이드 운영체제(OS) 확산이었다. 스마트폰 제조 능력이 떨어지는 제조사라도 넥서스를 참고해서 안드로이드 OS를 탑재한 제품을 만들라는 ‘레퍼런스 폰’ 성격이었다. 시장조사기관 IDC가 발표한 2분기 전 세계 스마트폰 OS 점유율을 보면 안드로이드는 87.6%의 점유율로 애플 iOS(11.7%)를 멀찍이 제치고 독점적 지위에 올라섰다. 스마트폰 OS 전쟁은 사실상 끝났고 넥서스의 수명도 다했다. 피차이 CEO가 말한 것처럼 모바일 시대도 서서히 저물고 있다.

구글은 픽셀을 통해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을 높이겠다고 공언했다. 많이 파는 것에 욕심이 없었던 넥서스와 180도 다른 행보다. 픽셀을 많이 팔려는 이유는 단순히 스마트폰 사업에 욕심이 있어서가 아니다. 진짜 이유는 AI 학습 데이터를 축적하기 위해서다.

AI는 크게 알고리즘과 데이터가 필요하다. 잘 짜인 알고리즘과 양질의 데이터가 충분히 있으면 AI는 그만큼 향상된다. 사람으로 치면 머리 좋은 학생이 좋은 교재로 공부를 많이 하게 되는 것이다.

구글은 픽셀을 통해 양질의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다. 특히 AI의 시각 관련 데이터 확보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구글은 픽셀의 가장 큰 장점으로 카메라를 꼽았다. 원본 사진을 무제한 저장할 수 있는 클라우드 공간도 제공키로 했다. 화질, 크기 등이 같은 조건에서 촬영한 사진으로 AI가 학습하게 돼 이미지 식별 능력을 키우는 데 큰 도움이 된다. 구글은 현재 이미지 식별 기술이 90% 이상을 기록하고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인간은 식별하지만 AI는 모르는 사진이 많다. 픽셀로 얻은 데이터로 공부를 시키면 정확도를 더 높일 수 있다.

이 밖에도 음성인식 AI 서비스 ‘구글 어시스턴트’를 탑재한 구글 홈으로는 음성 데이터를 수집할 수 있다. 구글은 이미 검색의 20%가 음성을 통해 이뤄지고 있다고 밝혔다. 쓰면 쓸수록 서비스 정확도와 활용도는 높아진다.

구글은 5종의 기기를 공개하면서 ‘메이드 바이 구글’이라는 용어로 묶었다. AI의 성능 향상을 위해 하드웨어까지 완전히 통제하겠다는 의도다.

구글은 AI 개발용 오픈소스 라이브러리 ‘텐서플로’도 개방했다. 외부 개발자를 끌어들여 AI 플랫폼으로 입지를 공고히 하겠다는 것이다. 구글은 알파고를 개발한 딥마인드를 자회사로 두고 있다. 딥마인드는 독립적으로 운영되지만 언제라도 구글과 힘을 합해 시너지를 낼 수 있다.

삼성전자, AI 플랫폼 기업 인수로 대응

삼성전자는 즉각 대응에 나섰다. 애플 시리를 개발했던 개발자들이 모여 만든 AI 플랫폼 업체 ‘비브 랩’(이하 비브)을 인수했다. 구글이 픽셀을 공개한 다음 날이었다. 우연의 일치일 수 있지만 보기에 따라 구글에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블룸버그 통신은 11일(현지시간) “AI 비서를 확대하려던 구글의 시도를 삼성전자가 막아섰다”고 지적했다. 갤럭시S8에는 삼성전자와 비브가 만든 음성인식 서비스가 탑재될 것이 유력하다. 구글 어시스턴트가 갤럭시에 들어갈 가능성은 그만큼 낮아진다.

해마다 전 세계에서 3억대 이상의 스마트폰을 파는 삼성전자는 여기서 나오는 데이터를 분석해서 활용할 도구가 없었다. 비브 인수는 외부 수혈을 통한 경쟁력 강화 전략으로 풀이된다.

비브 개발자들이 애플에서 나온 것은 시리를 두고 이견이 있었기 때문으로 전해졌다. 이들은 시리를 모든 서비스 및 기기와 연동하는 개방형으로 만들고 싶었지만 고 스티브 잡스는 애플 생태계 내에서 폐쇄적인 서비스로 방향을 잡았다.

비브는 삼성전자에 인수된 이후에도 독립적으로 운영된다. 비브가 처음 목표대로 개발된다면 스마트폰뿐 아니라 사물인터넷(IoT)과 다양한 애플리케이션을 연동해 복합적인 AI 서비스를 구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양보 없는 플랫폼 전쟁

모바일 시대 혈맹으로 불렸던 구글과 삼성전자는 왜 AI에서는 껄끄러운 관계가 될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각자의 길을 가려는 걸까. 이유는 AI 관련 산업이 플랫폼 사업이기 때문이다.

플랫폼 사업은 승자독식 구조다. 1등만 살아남고 2등 이하는 생존의 기회도 얻기 어렵다. 카카오톡이 메신저 시장을 장악하면 라인은 시장에 자리 잡지 못하는 식이다. 사용자들이 모두 연결돼야 플랫폼으로서 가치가 있기 때문에 한번 자리를 잡으면 쉽게 바뀌지도 않는다. 업체 입장에선 시장을 선점하거나 범접하기 어려울 정도로 뛰어난 서비스를 제공해야만 승리할 수 있다.

AI는 가능성이 무한하다고 평가받지만 이제 막 출발선에 선 분야다. 구글이 앞선 것처럼 보이지만 절대 강자도 없다. 왕좌를 차지하기 위해 업체들이 양보 없는 전쟁을 벌일 수 있는 상황이다.

AI 준비는 업종을 불문하고 맹렬하다. 애플은 최근 인도 AI 스타트업 튜플점프를 인수하는 등 1년간 4곳의 AI 스타트업을 인수하며 인재 확보에 나서고 있다. 페이스북은 AI 플랫폼 ‘빅서’를 외부에 공개하고 AI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AI를 적용한 챗봇 서비스를 내놓는 등 서비스 접목도 속도를 내는 중이다.

아마존도 차세대 성장동력을 AI로 꼽고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AI 플랫폼 ‘알렉사’가 탑재된 무선 스피커 ‘에코’는 시장에서 가장 앞선 제품으로 평가받는다. 아마존은 AI를 전자상거래에 적용해 유통구조 혁신을 꾀한다는 전략이다.

IBM은 ‘왓슨’ 플랫폼을 의료, IoT 등에 적용하며 B2B 분야에서 가장 앞선 기업으로 평가받고 있다. 최근에는 독일 뮌헨에 있는 왓슨 IoT 글로벌 본부에 2억 달러 규모의 투자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글=김준엽 기자 snoopy@kmib.co.kr, 그래픽=박동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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