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염성덕] 한미약품의 빛과 그림자 기사의 사진
제약업계에서 스포트라이트를 가장 많이 받은 회사는 한미약품이다. 빛과 그림자가 분명한 한미약품은 언론의 단골 메뉴였다. 지난해부터 지난달까지 한미약품은 여론의 찬사를 한 몸에 받았다.

한미약품은 지난해 8조원에 달하는 치료제 기술 수출 계약을 성사시켰다. 회사 설립 후 처음으로 국내 제약업계 매출 1위 자리에 올랐다. 특히 한미약품이 지난해 11월 약효를 크게 늘린 당뇨병 치료제 기술을 프랑스 제약사에 수출해 최대 5조원의 계약금과 기술료를 받게 되면서 이 회사의 연구개발 투자는 큰 주목을 받았다. 국내 제약시장 규모가 20조원임을 감안하면 한미약품의 기술 수출액이 얼마나 큰지 짐작할 수 있다. 한미약품의 쾌거는 바이오산업을 차세대 먹거리로 보고 전력 질주하는 기업들에 낭보가 아닐 수 없다.

제약업체가 신약 개발에 선뜻 나서기는 쉽지 않다. 투자금은 천문학적으로 들어가고 개발 기간은 오래 걸리는 반면 실패율이 높기 때문이다. 잘못하면 회사 문을 닫아야 할지도 모른다. 한미약품도 신약 개발에 치중하면서 2010년 첫 적자를 냈다. 그럼에도 단기성과에 연연하지 않는 오너는 신약 개발을 밀어붙였다. 여론은 오너의 기업가 정신을 높이 평가했다. 글로벌 제약시장 규모가 1000조원임을 고려하면 제2, 제3의 한미약품이 계속 나와야 한다는 주문도 잇따랐다.

한미약품의 선전은 지난달까지 이어졌다. 한미약품이 지난달 29일 오후 4시33분 미국 제넨텍과 1조원 규모의 항암제 기술 수출 계약을 맺었다고 공시한 것이다. 주가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초대형 호재였다.

빛이 있으면 그림자도 있다고 했던가. 순항하던 한미약품이 대형 악재를 만났다. 한미약품은 이날 오후 7시6분 독일 제약사로부터 8500억원의 항암제 기술 계약 해지 통보를 받았다. 초대형 호재의 효과를 상쇄시킬 만한 악재였다.

문제는 한미약품이 석연치 않은 이유로 악재를 늑장 공시한 점이다. 한미약품이 지난달 30일 오전 9시29분 악재를 공시하자 5.48% 올랐던 한미약품 주가는 18.06% 급락했다. 기관과 외국인은 한미약품 주식을 매도한 반면 개인은 매수했다. 개미의 피해가 컸다. 한미약품의 악재 공시 전에 공매도 규모도 5만주를 넘어섰다. 이날 사상 최대를 기록한 공매도 물량의 절반가량이 악재 공시 직전 거래됐다. 사전에 주가 하락을 예상했다는 추측이 무성했다.

의도적으로 공시를 지연한 것이 아니라는 한미약품의 설명을 믿을 사람은 별로 없다. 한국거래소는 한미약품의 주장을 일축하고 있다. 거래소는 12일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심상정 정의당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서 “개장 전에 공시하라고 수차례 독촉했는데도 한미약품은 시간을 끌며 고의적으로 공시를 지연했다”고 지적했다. ‘계약 파기 공시가 나온다’는 정보가 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해 사전에 외부로 유출됐다는 정황까지 나왔다. 미공개정보를 이용한 내부자거래와 불공정거래 의혹이 사실일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금융당국은 모든 의혹을 철저히 파헤치고 조사결과를 신속히 검찰에 넘겨야 한다. 금융당국이 노력한다고 하지만 금융당국과 기업의 관계를 ‘초록은 동색’으로 보는 시각이 만만찮다. 그동안 공시 위반에 대해 주로 솜방망이 처벌을 내린 것을 보면 ‘가재는 게 편’이라는 말이 나올 법하다. 금융당국은 공시시스템과 공매도제도를 정교하게 고쳐야 한다.

한미약품이 명심할 게 있다. “끊임없는 혁신과 도전, 치밀한 전략과 선제적 투자가 중요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다른 요소를 모두 갖춰도 시장 신뢰를 잃으면 그걸로 끝이다. 한순간에 모래성이 될 수 있다.”

염성덕 논설위원 sdyu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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