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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기자에서 꿀 따는 귀농 청년으로 박새롬 집사

방송 기자에서 꿀 따는 귀농 청년으로 박새롬 집사 기사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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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봉장이 가까워지자 벌들이 얼굴 앞을 '빙빙' 날아다녔다. 창고 앞에서 머리를 묶은 박새롬(34·김포전원교회 집사)씨가 벌집을 점검하고 있었다. 큰 눈에 하얀 얼굴, 줄무늬 셔츠를 입은 그녀는 주말에 서울 대학로로 놀러온 여느 젊은 여성과 다름없었다. 다만 분위기만큼은 두 아이의 엄마 포스를 풍겼다. 귀농한 청년농부 새롬씨는 지난 20일 "처음엔 벌에 쏘일까봐 무서웠다. 하지만 이젠 꽃잎사이를 날아다니는 벌이 너무 사랑스럽다"며 벌통 방향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인천 서구와 경기도 김포의 중간지역에 4950㎡(약 1500평) 넓이의 밭과 양봉장이 있다. 이곳이 새롬씨가 동갑내기 남편 노신영(김포전원교회 집사)씨와 꿀이나 밀랍을 얻기 위해 벌을 치는 곳이다. 벌통은 모두 200통이다.

잠시 숨을 고른 새롬씨는 ‘히즈허니’라고 쓰인 상표스티커를 병에 붙이기 시작했다. ‘히즈허니’는 ‘창조주가 허락한 꿀’ ‘착한 농부가 만드는 꿀’이란 뜻을 갖고 있다. “꿀차 드셔 보실래요? 벌들이 부지런히 오가며 수확한 진짜 꿀이랍니다.” 새롬씨가 말했다.



농사? 저 남자와 엮일 일 없다

-늘 바쁜가요.

“계절마다 바쁜 정도가 달라요. 꿀벌을 키우는 사람이다 보니 벌의 활동주기와 비슷해지는 것 같아요. 꿀을 수확하는 시기는 늦은 봄부터 이른 여름까지입니다. 하지만 수확철이 아니어도 늘 돌봐야 하죠.”

새롬씨가 2014년 3월 이곳에 온 것은 남편과 함께하기 위해서였다. 그 무렵 남편의 회사는 부도가 나 직장을 그만뒀다. 남편은 농부가 되고 싶어 했다. 새롬씨가 서울 CTS기독교TV에서 기자생활을 하던 때였다.

-남편과 어떻게 만났나요.

“저는 방송기자 생활을 10년 했고 남편은 서울과기대 전기공학과를 졸업한 엔지니어였어요. 기독청년모임에서 만나 자기소개를 하는데 남편이 나중에 농사를 짓고 싶다고 그러더군요. 저는 아버지가 시골교회 목사님이고 농촌생활을 했기 때문에 농사의 어려움을 잘 알고 있었어요. 어머니를 따라 밭농사도 지었고요. 남편 얘기를 듣고 ‘저 남자와 엮일 일은 없을 거다’ 생각했죠.”

-한데 결혼하셨네요.

“네(웃음). 남편은 늘 웃고 호감 가는 얼굴에 성격도 좋았어요. 결혼을 앞두고 남편에게 물었죠. ‘당신이 현재 일이 힘들어 그런 거지? 나중에 늙었을 때 농사짓자’고 했더니 남편이 조용히 끄덕였어요. 이후 농사 얘길 한동안 잊고 지냈어요. 결혼 3년차, 남편이 실업급여를 받게 됐는데 ‘지금이 기회’라고 생각했나 봐요. 농사에 도전하겠다고 저를 설득했지요.”

-그래서 설득됐나요.

“처음엔 아니에요. 엔지니어가 농사짓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따졌죠. 밤마다 울었어요. 아이만 없으면 도망가고 싶을 정도로 싫었고요. 하지만 기도하면 할수록 마음이 편치 않았어요. 남편에게 기회는 줘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남편을 사랑하거든요(새롬씨의 얼굴이 빨개졌다).”



남편 노 집사는 아내와 달리 줄곧 도시에서 살았다. 그래서 그런지 자연에 대한 동경이 있었다.

(노 집사) “직장생활은 빌딩 속에서, 그것도 종일 컴퓨터 화면만 보며 일하는 것이었어요. 거의 매일 야근하고 주말도 일하고, 특히 제 일은 정도가 더했어요. 첫째아이가 태어나고 100일간 일찍 들어온 기억이 거의 없어요. 회의가 들었죠. 그래서 농사짓기로 결심했어요. 1년간 밭을 빌려 여러 작물을 키웠지요. 다른 농부들과 논농사, 양봉도 해보며 가능성을 타진했습니다. 그중 양봉이 가장 매력적이었습니다. 수익성 있는 분야를 택한 점도 있고요.”



몇 안 되는 30대 젊은 양봉인

-양봉업에 젊은 사람이 없다면서요.

(노 집사) “양봉업하시는 분들의 연령이 대체로 높아요. 제가 전국에서 열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젊은 편이죠. 그래서 사명감이 느껴져요. 벌을 보존하고 키우는 일은 자연생태계를 위해 중요한 일이니까요.”

-어려운 점은 없나요.

(새롬씨) “외국의 값싼 꿀이나 설탕으로 만든 사양꿀 등에 밀려 우리나라 천연꿀 소비가 그리 좋지 않아요. 가격이 더 나가는 만큼 질이 좋은데, 사람들은 그저 비싸다고만 생각하죠. 저희는 수분을 기계로 날리지 않는 생꿀(숙성꿀)을 수확하고 있어요. 혹시 성경에 꿀 이야기가 있는 것 아세요? 잠언 24장 13절에 ‘내 아들아 꿀을 먹으라 이것이 좋으니라’라는 말씀이 있더라고요. 양봉을 시작할 즈음 이 구절을 보고 놀랐어요. 성경말씀의 꿀은 생꿀일 겁니다. 수확한 양은 거의 다 팔고 있습니다.”



-기자로서 꿈이 있었을 텐데 지금 어떤가요.

“기자생활을 그만두니 남편과 아이는 좋아했어요. 하지만 아쉬움은 있어요. 가정의 평화를 위해 꿈이 희생되는 것 같았거든요. 깨달은 건 하나님은 남편과 내 꿈을 만나게 하셨다는 겁니다. 기자로 일하면서 늘 선교에 관심이 많았어요. 그런데 양봉이야말로 북한을 포함해 세계 어느 지역이든 꽃이 있다면 할 수 있는 일이에요. 나중에 저희 양봉기술이 더 늘면 선교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렇다면 제 꿈은 계속되고 있는 셈이죠.”



-나눔 활동도 계획하신다고요.

“네, 남편은 벌꿀 농사를 시작할 때부터 수익의 일부는 기부하자고 말해왔어요. 아직 투자비용이 많이 들어 실천하지 못하고 있지만요. 재정적으로 조금 안정되면 북한의 농업을 지원하는 비정부기구(NGO)를 후원하고 싶어요. 그리고 통일이 됐을 때 북한에 가서 양봉기술을 전수해 주고 북한 농가의 자립을 돕고 싶어요. 도울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오늘 저희가 하는 일에 더 전문가가 될 겁니다.”

인천=유영대 기자 ydyoo@kmib.co.kr, 사진=강민석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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