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이지현] 걱정말아요 그대 기사의 사진
매연처럼 탁한 피곤이 손안에 고여 오는 해질 무렵, 하루치의 땀방울은 하루치의 빵이 된다. 온기 밴 아내의 웃음소리, 잠든 막내의 들꽃 같은 이마, 붉은 색연필로 언더라인을 그으시며 읽던 어머니의 성경책을 떠올리며 어설픈 ‘아버지’란 이름에 뿌듯해하던 가장이 있었다.

그는 이런 시를 남겼다. “나는 밤이 깊도록 글을 쓴다…. 이것은 내일이면 지폐가 된다. 어느 것은 어린 것의 공납금, 어느 것은 가난한 시량대, 어느 것은 늘 가벼운 나의 용전…. 아이들은 왜놈들이 남기고 간 다다미방에서 날무처럼 포름쪽쪽 얼어 있구나.”(박목월의 시 ‘층층계’ 중에서)

박목월(1915∼1978) 시인의 시 ‘층층계’를 보면 먹고살기 힘들었던 그 시절이나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진 지금이나 어른들의 고뇌는 한결같았던 듯하다. 요즘은 어딜 가나 ‘너무 힘들다’ ‘지금이 최악’이라고 말한다. 이를 증명하듯 최근 발표한 ‘OECD 2016 사회지표’에 담긴 한국인의 초상화는 우울하다. 한국인의 삶의 만족도는 35개 회원국 중 28위이며 자살률과 노인 빈곤율은 1위, 타인과 정부에 대한 신뢰도는 낮다. 이런 시름을 알코올에 의지하는지 알코올 소비량은 증가했다.

상한 감정을 다룰 줄 몰라서 알코올·도박·게임 등의 중독에 빠지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이런 것들로 상한 감정을 치유할 수 없다. 오히려 우리가 충만하게 누려야 할 즐거움, 감사, 행복의 감정까지 마비시키고 만다. 그 결과 인생의 의미를 찾아 헤매고 또다시 중독에 빠지게 된다.

어느 때보다 위로가 필요한 시대이다. 서로에 대한 믿음이 없기에 말 한마디에 상처받기 쉽다. 상처 입은 사람들로 하여금 최선을 다하게 만드는 방법은 물질적 보상보다 칭찬과 긍정적인 격려이다. ‘걱정 말아요 그대’ ‘괜찮아 앞으로 잘할 수 있어’라는 마음을 헤아린 말 한마디가 단단한 생명의 동아줄이 될 수 있다. 꽁꽁 얼었던 마음을 해빙시킨다. ‘나는 충분하다’고 믿는 순간 우린 비명을 멈추고 비로소 다른 사람들의 말을 들을 수 있다.

남을 비난하는 것을 금해야 한다. 비난은 현재의 고통과 불안을 잊기 위한 방편이다. 닥쳐올 고난을 걱정하는 것보다 감사를 되새기는 일이 먼저이다. 감사하는 태도는 모든 것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가장 감사하는 사람이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되기 쉽다. 대부분의 감사하는 사람은 우울증이나 부정적인 기분에 사로잡힐 확률이 적다고 한다.

영성작가 한나 스미스(1832∼1911)는 그리스도인이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평안을 누리지 못하는 이유는 대부분 하나님을 불신하는 데 있다고 말한다. 그는 일곱 자녀 중 네 자녀의 요절을 경험했고, 남편의 사역 실패와 건강문제로 힘겨웠으며 노년에 자신의 건강 악화와 경제난 등으로 평탄치 않은 삶을 살았다. 하지만 고난 가운데서도 하나님이 허락하신 부요함과 내적 평안을 누리며 살았다.

참된 위로는 사람이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참된 평안은 우리 자신을 아는 데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아는 데서만 얻을 수 있다. 하나님이 우리의 염려와 짐을 대신 져 주신다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사람들은 그 말씀을 믿는 대신 그것이 사실이라는 내적 확신이 먼저 생기길 기다린다. 그러나 하나님의 위로를 받길 원하면 하나님께서 위로에 대해 말씀하신 모든 말씀을 믿기로 결단해야 하는 것이다.

실패하는 것과 실패자가 되는 것에는 굉장한 차이가 있다. 우리가 그 실패 속에서 하나님께 집중할 수 있다면, 그 실패가 삶의 성공을 위한 발판이 될 수 있다면 기꺼이 실패할 줄 알아야 한다. 실패했어도 실패자로 남지 않는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자. 어떤 이의 노랫말처럼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기에 후회 없이 꿈을 꾸었다’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우린 새로운 꿈을 꿀 수 있으니까.

이지현 종교기획부 선임기자 jeeh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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