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폐장 38년 논란 결론내자 <1부>] 원자로 1·2호기 해체 경험, 상업용 ‘고리 1호기’에도 도움될까 기사의 사진
2006년 서울 노원구 공릉동에 있던 연구로 2호기 해체 작업이 진행되는 모습. 한국원자력연구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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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고리 1호기와 같은 상업용 원전 해체 경험이 없다. 고리 1호기 설비용량의 수백분의 1에 그치는 연구용 원자로 2기를 해체한 게 전부다. 다만 기술적 측면에서 연구용 원자로 해체 노하우가 본격적인 상업용 원전 해체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기대가 크다.

연구용 원자로 1호기는 1959년 미국 제너럴아토믹사에 73만1000달러를 주고 들여왔다. 국내 최초의 원자로이며, 정식 명칭은 ‘트리가 마크-2’다. 서울 노원구 공릉동(현 한국전력 중앙연수원)에서 1962년부터 가동을 시작했고, 10년 뒤인 1969년에는 연구로 2호기(트리가 마크-3)가 추가 도입됐다. 1호기의 용량은 250㎾, 연구로 2호기는 2㎿에 그치는 등 두 연구로 모두 소형 원자로였다. 방사성동위원소를 만들거나 중성자 빔, 원자력 이용 기술 등을 연구하는 데 쓰였다.

두 연구로의 은퇴가 결정된 건 1995년이다. 원자로를 관리하던 한국원자력연구원이 대전으로 옮기면서 연구원 내에 국내 기술로 만든 연구용 원자로 ‘하나로’가 도입되면서부터다. 2호기의 경우 1997년 작업을 시작한 뒤 2008년 해체를 마무리했다. 기념관으로 만드는 논의 때문에 작업이 지연된 1호기는 2001년부터 지난해까지 제염 작업과 방사성폐기물 이송을 완료했다.

해체는 원자력법에 따라 운전중지, 해체 계획수립, 제염, 폐기물 관리 작업으로 나눠 이뤄졌다. 우선 연구로 설비에 대한 전반적인 재고량 검사를 거쳤다. 이후 연구원 측에서 해체 계획서를 작성해 정부의 승인을 받았고, 이후 제염 절차가 이어졌다.

연구원은 화학적·기계적 제염 방법을 활용했다. 산성용액에 금속을 담가 표면을 녹여내거나 원자로 외부 콘크리트를 ‘스케블러’라는 장비로 깎아냈다. 오염이 심한 부분은 주변에 차폐 막을 설치하고 제염 작업을 완료했다. 이후 폐기물을 잘게 잘라 부피를 줄인 뒤 지난해 일부는 경주 방폐장에 처분했고, 일부는 연구를 위해 원자력연구원으로 이송했다. 해체비용은 2호기(197억원)와 1호기(41억원)를 합쳐 240억원 가까이 소요됐다.

주요 작업은 끝났지만 아직 해체가 마무리된 건 아니다. 건물 규제 해제 절차가 남아있다. 그간 방사선 관리구역으로 출입이 통제됐던 건물에 대한 안전성을 법적으로 인정받아야 하는 것이다. 향후 건물을 철거한 뒤 연구로 1호기를 기념관으로 만드는 데 112억원이 추가로 투입될 예정이다.

고리 1호기도 비슷한 해체 절차를 밟을 가능성이 높다. 다만 고리 1호기의 경우 용량이 587㎿에 달해 연구로 1·2호기와 규모 자체가 다르다. 연구용 원자로는 방사능 수치가 낮아 보호 장구를 착용한 인력이 직접 작업했지만 상업용 원자로는 사람의 접근이 불가능해 원격 해체를 해야 한다. 소형 원자로 해체에도 20년이 걸렸기 때문에 고리 1호기 해체에 시간과 비용이 얼마나 들지도 확실치 않은 상태다. 박승국 한국원자력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연구로 해체 작업을 통해 원전의 압력기 및 냉각펌프 등을 어떻게 제염해야 하는지에 대한 기술을 축적했다”며 “고리 1호기 해체 작업 시 참고용으로 연구로의 사례를 적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세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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