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폐장 38년 논란 결론내자 <1부>] 시한부 ‘고리 1호기’ 사용후핵연료·폐기물 갈 곳 없다 기사의 사진
부산 기장군 고리 원전 1호기 내 습식 저장소. 이곳에 328다발의 사용후핵연료가 보관돼 있다. 내년 6월 고리 1호기 가동이 중단되면 핵연료는 여기서 5년간 냉각기간을 거친다. 하지만 고리 원전 내에는 건식 저장 시설이 없고, 국내에 고준위 방폐장도 없어 현재로선 5년 뒤 어떻게 처리할지 대책이 없는 상태다. 한국수력원자력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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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8개월. 국내 원전 역사 37년 만에 처음으로 영구정지가 확정된 고리 1호기에 남은 시간이다. 국내 첫 상업용 원자로인 고리 1호기는 내년 6월 18일 가동 중단된 뒤 폐로 절차를 밟게 된다. 국내에서 상업용 원전 해체는 사상 처음이다. 노후 원전의 안전성 담보와 함께 실전 폐로 경험을 축적할 기회이자 시험대다. 성공적으로 해체할 경우 세계 원전 해체 시장에서 기술적 우위를 점할 수 있는 전환점이 될 것이란 기대가 나온다. 다만 역사적인 첫 원전 해체가 녹록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고리 1호기 내 사용후핵연료를 보관할 임시 저장소 문제가 가장 크다. 정부의 고준위 방폐장 건설 계획이 지연된다면 고리 1호기 해체 과정에서 나오는 고준위 폐기물을 버릴 장소도 마땅치 않다. 폐로 결정 외에 다른 절차는 명확히 정해진 게 없는 상황에서 갈 곳 없는 핵연료와 폐기물 처리가 선결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원전 1기 해체까지 최소 15년

통상 폐로 과정은 5년간 준비기간을 거쳐 해체하는 ‘즉시해체(10∼30년 소요)’와 영구정지 후 안전밀폐관리 과정을 거쳐 해체하는 ‘지연해체(50∼100년 소요)’로 나뉜다. 한국수력원자력은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관리 기본계획’에 맞춰 즉시해체 방식에 중점을 두고 있다. 한수원에 따르면 고리 1호기는 ①해체 기획 ②원전 특성 분석 및 운전 정지 ③해체 설계 ④제염 ⑤절단 및 철거 ⑥폐기물 처리 ⑦부지 복원 ⑧부지 규제 해제 등의 순서로 해체된다.

우선 한수원은 원전 내 잔열 발생을 막기 위한 원자로 냉각이 끝나는 2022년까지 규제기관인 원자력안전위원회에 해체 계획을 수립해 제출할 계획이다. 원안위가 인허가를 내리면 제염(除染·방사능 오염 제거) 작업이 시작된다. 원자로 안에서 냉각이 끝난 핵연료봉을 꺼낸 뒤 건물과 시설물 표면의 방사성 물질을 닦아낸다. 이후 로봇을 활용해 원자로 설비를 절단한다. 부지를 원 상태로 복원하는 작업과 함께 부지에 일반인 출입금지 등의 규제를 해제하는 절차가 이어진다. 최종 원전 해체까지는 최소 15년이 걸릴 전망이다. 고리 1호기의 총 해체 예산은 6033억원으로 책정됐다.

문제는 해체기술 확보다. 원전 해체 핵심 기반 기술 38개를 모두 갖춘 국가는 미국과 독일, 일본뿐이다. 원전 해체를 경험한 나라도 이들뿐이다. 한국의 경우 원전 해체 핵심기술 38개 중 23개, 상용화 기술 58개 중 41개를 확보하는 데 그쳐 선행국의 70% 수준에 머물고 있다. 정부는 2022년까지 관련 분야를 집중 육성해 해체 준비를 마무리하겠다는 방침이다.

정부 발표에도 우려는 여전하다. 해체 과정에서 남는 폐기물 때문이다. 방사성 물질이 묻은 천과 종이, 절단된 콘크리트 조각 등은 중·저준위로 분류돼 경주 방폐장으로 이송하면 된다. 다만 원자로 관련 설비는 고준위 폐기물이어서 2035년으로 예정된 중간저장시설 운영 시기까지 기다려 운반하거나 따로 임시 저장소를 만들어야 한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고리 1호기 해체가 예상보다 늦어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핵연료와 폐기물 처리가 관건

지난 11일 부산 기장군 장안읍에 위치한 고리원전 1호기 내 습식 저장소. 오염 방지 장비를 착용하고 저장소 안으로 들어서자 12m 높이의 수조 안에 빽빽이 들어차 있는 사용후핵연료가 눈에 들어왔다. 고리원전은 경수로 방식이어서 매일 핵연료가 나오는 월성원전(중수로)과 달리 1년에 한 번씩 원자로에서 수명이 다한 핵연료를 빼낸다. 이미 올해 작업이 끝난 터라 저장소 내부는 조용했다. 고리 1호기 내 수조에는 총 441다발을 채울 수 있고, 현재 328다발이 보관 중이다.

내년 6월 가동이 중지되면 고리 1호기 내에 보관 중인 핵연료는 5년간 수조 안에서 열을 식히는 냉각기간을 거친다. 문제는 그 이후다. 고준위 방폐장이 없는 상태에서 이 연료들을 옮길 임시 저장소도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2022년이 되면 월성원전은 이미 포화 상태다. 한빛원전은 2024년, 한울원전은 2026년이 되면 저장소가 핵연료로 가득 차게 된다. 고리 1호기에서 다른 원전으로 이송하는 방법도 사실상 불가능한 셈이다. 한국수력원자력은 현재 고리원전 내에 건식 저장장치를 설치하거나 신고리 3·4기로 습식 저장소를 옮기는 방안을 고민 중이다. 하지만 건식 저장소가 자칫 영구처분 시설이 될까 우려하는 지역 내 반대로 대안 마련이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고리원전 인근 주민들의 가장 큰 고민도 ‘폐기물’이다. 김영만(65) 기장군 월내리 이장은 “안전한 해체를 위해서는 폐기물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며 “고준위 폐기물을 전문적으로 처리하는 시설 부지를 빨리 정하고, 최대한 빨리 건설해야 주민들도 안심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어차피 임시 저장시설을 지어도 종국에는 영구 저장소로 폐기물을 옮겨야 한다”며 “임시방편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박갑용(52) 고리원전민간환경감시기구 위원은 “해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게 핵연료와 폐기물 처리 과정이고, 주민들도 이 부분을 걱정하고 있다”며 “건식 임시 저장소든, 고준위 방폐장이든 정부가 명확한 확신을 갖고 지역과 소통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장=박세환 기자 foryou@kmib.co.kr, 그래픽=안지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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