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유영만] 공부는 생각의 틀 부수는 망치다 기사의 사진
제4차 산업혁명이 일어난다고 해서 4차 공부혁명으로 이어져 버튼 하나를 누르면 하고 싶은 공부를 앉아서 다 할 수 있는 시대가 올 수 있을까.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능에 버금갈 정도로 발달하면서 자동화는 가속화되고 있다. 개별적으로 발달한 다양한 정보기술이 기술적으로 융합되면서 생각지도 못한 혁신적 변화가 일상화되는 일들이 바로 4차 산업혁명이 몰고 오는 변화들이다. 4차 산업혁명은 버튼만 누르면 스마트폰 안에서 거의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초연결 사회를 불러오고 있는 것이다.

교육 분야도 예외는 아니다. 교육의 무대가 인간적 ‘접촉’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던 과거의 교육에서 사이버 공간을 통해 전 세계 교육을 무료로 ‘접속’해서 들을 수 있는 디지털 교육으로 바뀌고 있다. 굳이 대학에 가지 않아도 세계 유수 대학의 강의를 온라인에서 무료로 들을 수 있는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배우고 익히는 과정에 기술이 관여된다고 인간의 공부하는 과정을 기술이 대신해줄 수는 없다. 특히 공부는 공부하는 사람의 집요한 노력과 끈질긴 정성이 일정 시간 지속되어야 하는 힘들고 어려운 과정이다. 공부는 정신노동이라기보다 육체노동이다. 힘들게 공부해야 힘들 때 힘이 된다. 복잡한 문제에 대한 해결 대안을 찾아보고 이전과 다른 방법으로 깊은 사색을 통해 새로운 실마리를 찾는 공부 과정은 기술이 대신해줄 수 없다. 기술적 수단으로 대체할 수 없는, 가르치는 사람과 배우는 사람의 역동적인 상호작용, 정답을 찾을 수 없는 난제에 대한 난상토론과 상호교감, 답이 없는 전대미문의 문제에 대한 해결대안을 찾아 나서는 여정에서 함께 공부하며 느끼는 즐거움은 인간을 행복하게 만드는 즐거운 미덕이 아닐 수 없다.

문제는 공부를 도와주는 기술이 발전할수록 편리한 공부법에 익숙해지면서 스스로 질문을 던져 문제와 씨름하는 힘든 공부를 꺼린다는 데 있다. 진짜 심각한 위기는 생각하는 인간, 호모사피엔스가 기술이 발전하면서 점점 생각하지 않는 습관에 물들어간다는 점이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철학자 데카르트가 남긴 명제가 이제 기계도 인간의 생각에 버금가는 지능을 가질 수 있게 되면서 새로운 명제로 바뀌고 있다. “나도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기계도 인간의 생각을 위협하는 생각을 할 수 있게 되면서부터 기계가 할 수 없는 인간 고유의 생각하는 방법을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대가 올 것이다. 기계도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면서 데카르트의 명제는 다시 “나도 생각한다. 고로 나는 위험하다”로 바뀌고 있다.

인간이 기술적 편리함에 물들수록 이전과 다른 공부를 통해 생각하는 방법을 의도적으로 바꾸지 않고 있는 가운데 기계는 더 빠르게 인간의 생각을 위협하고 있다. 사람은 이전과 다른 불편한 상황에 우연히 직면하거나 이제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색다른 상황과 마주칠 때 이전과 다른 방법으로 생각하기 시작한다. 4차 산업혁명이 일어난다고 해도 여전히 변하지 않는 공부의 본질은 기계가 대체할 수 없는 인간 고유의 사고능력을 공부하는 데 있다.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사리에 어둡고, 생각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게 된다(子曰學而不思則罔 思而不學則殆).” 논어의 위정 제15장에 나오는 말이다. 진정한 공부란 배우는 내용들이 지금 여기서 무슨 의미가 있으며, 이것을 안다는 것은 나에게 어떤 시사점을 던져주는 것인지 깊이 사색하는 시간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생각만 하고 내 생각의 틀을 깨부술 수 있는 새로운 내용을 끊임없이 공부하지 않으면 나는 과거의 내 생각에 안주하여 비슷한 생각을 무한 반복하는 어리석음에 빠질 수 있다.

공자의 이 말을 다르게 바꿔서 확장 해석해도 큰 무리는 없을 것이다. “배우기만 하고 실천하지 않으면 자기 고집에 빠질 수 있고, 실천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어제와 다른 나를 만날 수 없다.” 배움으로 생긴 생각의 옳고 그름은 실천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실천은 현실에 안주하거나 습관적인 타성의 덫에 걸려 있는 생각의 진부함을 알려주는 생각 망치다. 공부는 생각의 고치 안에 안주하고 있는 생각을 망치로 깨부수는 고통스러운 과정이다. 망치는 그냥 도구가 아니라 생각의 가치를 배가시키는 창조의 도구인 셈이다.

“같은 짓을 되풀이하면서 다른 결과를 기대하는 것은 정신착란이다.” 미국의 작가, 리타 메이 브라운의 말이다. 이 말을 공부에 대입한다해도 여전히 유효하다. “같은 공부를 반복하면서 다른 생각을 기대하는 것은 정신병 초기 증세다.” 어제와 다른 공부로 나만의 색다름을 찾아 나다움을 발견하는 공부만이 내가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이다.

유영만 한양대 교수 (지식생태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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