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영 칼럼] 언제까지 땜빵 아파트 정책인가 기사의 사진
지난 7월 초 낯선 번호의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공인중개사라고 스스로를 밝힌 발신자는 며칠 후로 예정된 서울 흑석뉴타운 아크로리버하임의 분양 정보와 함께 반드시 청약할 것을 권유했다. 전혀 관심도 없던 내겐 뜬금없는 문자였다. 개인정보가 유출됐다는 생각에 불쾌했다. 그러나 덧붙여진 내용, ‘당첨 즉시 분양권 억대 보장’은 구미를 당겼다. 그는 당첨되면 꼭 자신을 통해 분양권을 거래할 것을 당부했다. 아크로리버하임 한 평형의 최고 경쟁률은 240대 1이었다. 며칠 후 만난 지인은 “우린 네 식구가 각각 청약을 했어”, “돈은 이렇게 벌어야지”라고 했다. “정말 돈은 이렇게 버는 건가.” 인정도 부인도 못하는 면구스러운 현실은 서울 강남발 ‘아파트 값 광풍’에 일조했다. 나와 주변에도 투기의 일상화가 스멀스멀 다가왔음을 자책한다.

정부가 아파트 값이 너무 오른 지역을 겨냥한 대책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분양권 전매제한 기간을 늘리고 재당첨 제한금지 조항을 부활하는 방안부터 투기과열지구 지정까지 검토하고 있다. 현 정부 여덟 번의 부동산 정책이 전반적 집값 띄우기였다면 곧 나올 아홉 번째 해법은 국지적 집값 가라앉히기로 바뀌는 셈이다.

대한민국 아파트 정책은 늘 이 본새였다. ‘(조금이라도) 내리면 올리고, (아주 많이) 오르면 내리는’ 반복이었다. 집값을 올리는 것도 문제지만 내리는 데 골몰하는 정부도 지구상에 대한민국이 거의 유일하다. 그만큼 대증적 접근이란 얘기다. 대한민국에서 아파트는 사실상 ‘제로 섬’ 게임이다. 경제가 늘 성장하지 않듯 아파트 값도 항상 오르지는 않는다. 때를 잘 만나 돈을 버는가 하면 피눈물을 흘리는 ‘하우스 푸어’도 있다.

이제는 냉탕과 열탕, 규제와 완화의 반복을 넘어 아파트 정책을 원점에서 다시 한번 돌아봐야 할 때다. 예컨대 아파트 후분양제, 비소구 주택담보대출(non-recourse loan) 등에 대해서도 관심을 증폭시켜야 한다.

다수에게 아파트는 당연히 선분양되는 상품으로 인식된다. 그러나 이는 개발독재 시절 자금이 부족한 건설업체의 편익에 초점이 맞춰진 데서 비롯된 것이다. 지금 같은 저금리에 100%가 넘는 주택보급률을 감안하면 아파트 후분양제는 거품을 없애고 실수요 중심의 시장을 만들 기회다. ‘가계 빚과 부동산 경기’ 함수를 동시에 만족시킬 수 있는 호재라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다뤄봐야 한다.

비소구 주택담보대출은 한국경제의 현안인 가계 빚 증가 위험을 막을 수 있는 획기적 장치다. 이 제도는 집을 담보로 한 채무자가 빚을 갚지 못하더라도 경매 대상인 집값 이상의 상환 의무를 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집은 물론 채무자의 다른 재산이나 급여까지 압류할 수 있는 금융회사의 무한한 권한을 차단하는 제도다. 채무자의 도덕적 해이를 초래하고 금융소비자의 불편을 초래한다는 지적이 있지만 상환 능력을 고려하지 않고 무분별하게 대출하는 금융회사에도 책임을 지워 결국 ‘약탈적 대출’을 막도록 한다는 순기능 주장이 갈수록 설득력을 얻고 있다. 금융회사가 돈을 빌려주는 이유는 채무자가 빚을 갚을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빚을 받아낼 자신이 있기 때문이란 게 한국금융의 현실이다. 미국의 경우 캘리포니아 등 현재 12개 주에서 이를 도입하고 있다. 미국이 2008년 금융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던 요인으로 이 제도를 꼽는 사람도 많다.

한국인에게 아파트는 주거공간 이상이다. 좌절의 원천이자 때로는 꿈의 결집체다. 아파트 정책에 관한 한 익숙하지 않고 심지어 불온하게 들리는 모든 수단까지 정부가 끌어안고 숙의해야 하는 까닭이다.

정진영 논설위원 jyj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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