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이흥우] 최순실·우병우 참 거시기하다 기사의 사진
최경희 이화여대 총장이 결국 물러났다. 평생교육 단과대학 논란에 최순실·정유라 모녀 의혹까지 불거지면서 더 버티지 못하고 130년 이대 역사상 첫 불명예 퇴진한 총장으로 기록됐다. 그는 물러나면서 “(정씨의) 입시와 학사관리에 특혜가 없었으며 있을 수도 없음을 분명히 말씀드린다”고 항변했다. 과연 그럴까.

이대가 정씨 입학연도에 맞춰 승마를 체육특기생 선발 종목에 추가한 것은 기막힌 우연의 일치일 수 있다. 그리고 정씨 혼자 합격한 것도 승마 실력이 뛰어난 산물로 치부할 수 있다. 그러나 입학 이후 학사관리는 일반 학생의 상식을 뛰어넘는 파격의 연속이다. 담당교수는 방학기간에 기말과제를 제출한 정씨에게 “앗! 첨부가 되지 않았습니다. 다시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라고 극존칭으로 대우한다. 여태 교수가 갑이고, 학생이 을인 줄 알았던 상식은 여지없이 깨졌다.

수업에 한 번도 출석하지 않고도 인터넷에 나도는 내용을 짜깁기한 리포트를 내고 학점, 그것도 좋은 성적을 받는 정씨의 재주는 신공에 가깝다. 학기 초 정씨 ‘신분’을 미처 알아채지 못해 “얘는 F야” 했다는 한 교수는 승마대회 출전 스케줄을 출석으로 인정하는 증빙서류 하나 받고 높은 학점을 준다. 다른 학생이 얼마나 억울하면 “정유라씨는 어떻게 수업에 단 한 번도 나오지 않고 최소 B 이상을 챙겨갈 수 있나요”라고 대자보를 썼을까. 보통사람들은 이런 걸 특혜라고 알고 있는데 최 전 총장이 보기엔 흔히 있는 일인가보다. 이제 특혜의 사전적 정의도 바꿔야 할 것 같다.

최순실씨의 호가호위는 의혹의 수준을 넘어섰다. 연일 터져 나오는 미르·K스포츠재단을 통한 그녀의 수상한 활약은 손오공 뺨친다. 죄다 “재단의 실질적 책임자는 최씨”라는 전 재단 관계자의 증언을 뒷받침하는 정황들이다. 새누리당이 기를 쓰고 최씨의 국감 증인 채택을 훼방한 속내가 짐작된다. 최씨의 전횡 정황과 ‘대기업들의 발목을 비틀어서 재단 기금을 조성했다’는 박병원 경총 회장의 발언까지 공개됐는데도 전경련은 여전히 ‘기업들의 자발적 모금’이라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이렇게 설명할 수밖에 없는 전경련의 처지도 딱하다.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이 ‘수사중’을 이유로 21일 열리는 국회 운영위원회의 청와대 비서실 국정감사 불참사유서를 제출했다. 청와대가 이미 “민정수석이 국감에 참석한 전례가 없다”고 보호막을 친 상태여서 새로울 건 없다. 김대중, 노무현정부에서 민정수석이 다섯 차례 국감에 참석한 건 전례가 아닌 모양이다. 고위 공직자가 직(職)을 유지하며 수사를 받는 것도 전례가 없기는 마찬가지다.

부모의 자식사랑은 당연하다. 군에 간 아들이 편한 곳에서 복무하길 바라는 건 인지상정이다. 그러나 우 수석도 최씨처럼 자식사랑이 지나쳐 화를 불렀다. 서울경찰청 차장 운전병으로 차출된 과정도, 차출 이후 의경 생활도 일반인의 상식으론 상상하기 힘든 일인데 우 수석 아들에겐 가능했다. 아들의 코너링이 좋아서 그런 거란다. 참 거시기하다.

박근혜 대통령은 20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미르·K재단을 “경제단체 주도로 설립된 민간재단”이라고 확실하게 선을 그었다. ‘근거 없는 의혹’이라는 기존 입장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않았다. 대통령 인식이 이럴진대 산 권력 앞에선 한없이 나약한 검찰이 제대로 수사 역량을 발휘할지 의문이다.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는 투의 국민을 우중(愚衆)으로 아는 권력의 오만함이 거대한 민중저항의 도화선이 됐던 역사도 박근혜정부엔 마이동풍이다.

이흥우 논설위원 hw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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