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윤중식] 생존 의지가 절망 이긴다 기사의 사진
“같이 점심 먹자!”라는 말 속에는 무수한 의미가 있다. 단지 밥을 같이 먹는 데 그치지 않고 서로를 더 깊이 알아가자는 제안도 들어 있다. 나아가 현재 처한 문제에 대한 해답을 얻고 싶다는 절실함이 담겼다.

우리는 누구나 인생의 중요한 문제에 직면하면 자신에게 도움을 줄 것 같은 사람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민다. 존경하는 스승이나 선후배에게 조언도 구한다. 지혜롭고 현명함을 갖춘 ‘멘토’를 찾거나 비록 내 편을 들어주지 않아도 도움이 된다면 쓴소리도 마다치 않는 비판적인 친구를 찾기도 한다.

인간은 의미를 추구하는 존재이다. 내면 깊숙이 인생이란 과연 무엇인지, 우리의 소명은 대체 무엇인지 알고 싶은 갈망이 있다. 무슨 전공을 선택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대학생이든 창조주의 뜻을 찾는 크리스천이든, 책상 앞에 앉아 자신의 존재 목적을 궁리하는 철학자든, 대다수는 자기 인생의 반석을 갈구하고 그것과 관련된 질문을 한다.

“왜 사는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삶의 본질은 무엇인가. 나는 자연과 주위 사람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행복이란 어디에 있는가. 나는 도대체 누구인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수용소에서 생활한 유대인 심리학자 빅터 프랭클은 사람의 정신을 파괴하는 ‘죽음의 수용소’에서조차 의미를 찾아내고 이해해야 하는지에 대해 역설했다. 그는 “왜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그 어떤 상황도 견딜 수 있다”고 외친 독일의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의 말을 강조했다.

프랭클은 또 “이 세상 최고의 자유는 선택할 수 있는 자유다”는 말을 남겼다. 그는 아우슈비츠 감방에서 가스실로 끌려갈 뻔하는 고통을 수없이 당했다. 하지만 그는 절대로 포기하지 않았다. 포로가 생존할 가망은 살겠다는 의지에 달려 있고, 생존 의지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의미와 목적을 찾는 능력에 달려 있음을 입증했다. 절망적인 상황을 거뜬히 이겨내는 사람들에게는 ‘의미의 프레임’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유명한 무신론자 리처드 도킨스는 “우주에는 설계도 목적도 악의도 선의도 없다. (우주는) 맹목적이고 불편부당하다”라고 주장한다. 도킨스 주장에 의하면 의미를 찾는 모든 노력이 잘못된 것이다. 찾을 것이 없으므로 찾아봤자 헛수고에 불과하다. 과연 우주와 인생만사가 다 그럴까. 그렇게 간단하단 말인가. 만약 인생에 더 많은 것이 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최근 몇 년간 일부 젊은이 사이에 ‘자각몽’(루시드 드림·自覺夢) 열풍이 이어지고 있다. 자각몽이란 자신이 꿈속에 있다고 느끼면서 꿈을 꾸는 상태를 말한다. 계속되는 취직 실패로 자존감이 한없이 떨어져 수차례 자살을 시도하다가 자각몽을 통해 탈출을 시도하는 이도 급증하고 있다.

꿈에서라도 원하는 것을 이루고 싶다는 절박한 바람 때문에 일어나는 기현상이다. 관련 전문 인터넷 카페 회원이 수만명에 달한 지도 오래다. 요즘엔 알츠하이머 환자에게 처방되는 약물이 자각몽을 꾸는 데 도움이 된다는 이야기가 퍼지면서 그 약물을 찾아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며 부나비처럼 맴도는 슬픈 청춘도 급증하고 있다.

약물은 결국 중독을 낳는다. 우리에게는 이 어둠을 함께 뚫고 나가 영혼을 맑게 해 줄 친구가 필요하다. 하지만 그게 어디 쉬운가.

오곡백과 풍성한 결실의 계절이지만 허허롭기만 하고, 영적 허기도 심해진다.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때문만이 아니다. 사방을 둘러봐도 맘 놓고 밥 한 그릇 먹을 수 있는 친구가 많지 않다. 한 끼 식사 자리가 불편하다면 독(讀)선생을 만나보자. 웃음과 재치를 곁들인 지혜의 진수성찬 ‘CS 루이스와 점심을 먹는다면’(국제제자훈련원)으로 유쾌하고 편안하게 루이스를 알아가는 시간을 가져보자.

윤중식 종교기획부 부장 yunj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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