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김현자 <9> 흑인 청소년들에 조카 피살… “예수 가르침대로 용서”

아들 잃은 시숙, 선처 요구하고 성금… 美 장로교 감동적인 이야기 영화로

[역경의 열매] 김현자 <9> 흑인 청소년들에 조카 피살… “예수 가르침대로 용서” 기사의 사진
30여년 동안 YWCA의 성장 기반을 마련했던 박에스더 선생(1902∼2001·가운데)은 여성 직업훈련과 지도력 양성에 힘썼다. 김현자(오른쪽 끝) 전 국회의원에게도 늘 따뜻했다.
남편이 연세대 부산분교에서 일하는 3년 동안 나는 부산YWCA에서 일했다. 1958년 4월 남편의 제자가 신문을 들고 황급히 사택으로 찾아왔다. 남편의 얼굴은 하얗게 변했다. “아니 어떻게 이럴 수가….” 신문에는 미국 펜실베이니아대에서 정치학 공부를 하던 조카 오인호가 흑인 청소년들에게 피살됐다는 기사가 실려 있었다.

인호는 남편의 큰 조카로 오기병 장로의 장남이었다. 시댁은 기독교 내력이 깊었다. 시아버지 오현경은 중국 훈춘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기독교 교우단 ‘훈춘한민회’ 재무부장을 지냈다. 가족의 충격은 어마어마했다. ‘미국은 우리에게 복음을 전해준 선교사의 나라가 아니었던가.’ 아주버님은 영도교회 장로였다. 고민하던 시숙이 가족회의를 소집했다. 예배 후 그가 입을 뗐다.

“며칠 동안 기도하며 ‘흑인 아이들이 왜 그런 일을 저질렀을까’ 생각했어요. 아이들은 인호에게 원한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예수님을 모르고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오. 그래서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이들을 용서하기로 결심했소. 미국 당국에 가해자들을 최대한 관대하게 처분해달라고 하겠소. 그 아이들을 교회가 돌볼 수 있도록 우리 가족이 성금을 보냅시다.”

가족들은 동의했다. 남편은 이 결정에 따라 미국 필라델피아시장 등 관계자에게 편지를 썼다. ‘하나님이 우리의 슬픔을 기독교적으로 승화시킬 것이라 믿습니다.…소년들을 선처해주시기 바랍니다.…석방 후 소년들을 선도하는데 쓰이도록 소정의 성금을 보냅니다.’ 언론은 ‘원수를 사랑하는 가정’이라며 뜨거운 반응을 보였고 미국 장로교는 이 이야기를 영화로 제작했다. 이런 용서와 사랑은 언제, 어디에서나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일 것이다.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 13:34).”

전쟁 후 복구가 시급했지만 집권당인 자유당은 권력을 잡는 데만 혈안이 됐다. 이승만 대통령의 영구집권을 위해 3선 개헌을 진행했고 1960년 3·15 정·부통령 선거를 ‘부정’이 난무하게 만들었다. 문맹자나 연로한 사람에겐 아예 투표용지를 주지 않았다. 우리 어머니에게도 용지가 나오지 않았다. 투표장에서는 무효표를 만들어내고, 개표 집계를 조작했다.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시위가 들불처럼 났다. 이어 이기붕 부통령 당선자 가족이 권총 자살을 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장남이 부모를 먼저 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것이었다.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부통령 당선자의 부인 박마리아 선생은 나를 처음 YWCA로 이끌어준 분이었다. 당시 YWCA 회장이자 이화여대 부총장이기도 했다. 4·19혁명으로 이 대통령이 하야했지만 혼란은 계속됐고 이듬해 5·16 군사정변이 일어났다. 우리 부부는 그 사이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왔다.

나는 이화여대 YWCA 지도간사로 부임했다. 임명장은 대학으로부터 받고, 급여는 YWCA가 지급하는 형태였다. 내 사무실은 대강당 입구에 있었다. 박에스더 선생은 교수들을 불러 조촐한 환영행사를 열어주었다. 나는 학생들을 지도하면서 일주일에 3∼4시간 교양영어를 가르쳤다. 당시 이대 YWCA는 회원이 1000명에 가까웠다.

정리=강주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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