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코너-전석운] 한미동맹과 격랑의 동아시아 기사의 사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임기 말에 동아시아의 역학관계가 요동치고 있다. 필리핀의 두테르테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한 자리에서 미국과의 관계 단절을 선언하는가 하면, 일본 아베 신조 총리는 북방영토 반환협상을 계기로 미국의 숙적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급속도로 가까워지고 있다. 중국, 러시아와 대치하고 있는 미국으로서는 핵심 동맹국들의 ‘이적행위’에 충격을 받고 있다.

‘필리핀의 트럼프’ 두테르테 대통령이 오바마 대통령에게 육두문자를 날릴 때만 해도 객기를 부린 것으로 치부됐다. 재판을 거치지 않은 마약사범 3000여명의 처형이 인권을 무시한 것이라는 미국의 훈수에 발끈할 때만 해도 국내용 발언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런 그가 베이징에서 미국에 작별을 고하자 미국은 화들짝 놀랐다. 두테르테 대통령이 중국으로부터 대규모 투자를 약속받으면서 미국과의 군사훈련 중단을 선언하자 미국은 아연실색했다. 부랴부랴 대니얼 러셀 미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가 마닐라로 향했다.

동아시아에서 미국의 패권을 충실히 떠받치는 일본의 독자 행보도 심상치 않다. 미국과 러시아는 냉전 이후 최악의 관계로 치닫고 있지만 일본과 러시아는 해빙 국면을 연출하고 있다. 아베 총리는 12월 15일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을 자신의 고향 야마구치현으로 초청해 정상회담을 갖는다. 일본은 푸틴 대통령의 방일을 앞두고 국제사회의 제재 대상인 러시아 최대 상업은행 스베르방크에 40억엔(약 440억원)을 융자할 방침이라고 니혼게이자이신문이 보도했다. 북방영토 반환 협상의 성공을 위해 공을 들이고 있는 것이다.

아베 총리는 이에 앞서 두테르테 대통령을 25일 일본으로 초청해 정상회담을 갖는다. 아베 총리는 두테르테 대통령에게 50억엔(약 550억원)의 차관과 해양순시선 2척을 선물할 것으로 전해졌다. 일각에서는 아베 총리가 미국을 대신해 두테르테 대통령을 다독이려 나섰다는 관측도 있지만 일본 정부는 부인하고 있다. 분명한 건 미국에 등을 돌린 필리핀에 다가가기 위해 일본이 손을 내밀고 있다는 것이다.

한반도에서는 북한이 핵·미사일 도발로 한·미동맹과 미국의 패권에 도전하고 있다. 북한을 압박하기 위한 경제 제재에 나섰지만 중국의 애매한 태도 때문에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북한의 핵 도발에 대응하기 위해 자체 핵무장에 나서거나, 전술핵을 들여와야 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미국의 반대에 부닥쳐 실현 가능성이 없다. 미국은 핵무기를 탑재한 전략자산이라도 한반도에 상시 순환배치해 달라는 한국 국방부의 요청도 거절했다. 애슈턴 카터 미 국방장관은 지난 20일(현지시간) 워싱턴에서 한·미 연례안보협의회를 마친 직후 한민구 국방장관과 가진 공동기자회견에서 “미국의 확장억제 능력은 막강하다”고 강조했지만, 전략자산의 배치 요구에 대해서는 언급을 피했다. 사드는 내년 중 배치하기로 두 장관이 거듭 확인했지만 전략자산 배치 여부에 대해서는 미묘한 입장 차이를 노출했다. 한 장관은 국내의 안보불안 심리를 이유로 전략자산의 상시 배치를 요구했지만, 카터 장관은 현재 주한미군의 전력과 괌에 주둔하는 전략자산의 운용으로도 충분하다는 입장을 강조했다.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안보지형은 급변하는데 미국의 인식과 대응은 당사국들의 수준과 뚜렷한 괴리를 보이고 있다. 이것이 미국의 정권교체기에 나타나는 일시적인 현상에 그칠지, 장기적으로 이 지역에서 미국의 영향력 퇴조로 이어질지는 지켜볼 일이다.

워싱턴=전석운 특파원 swchu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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