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폐장 38년 논란 결론내자 <2부>]  스위스 “원전으로 혜택… 결과도 책임” 공감대 기사의 사진
지난달 22일 스위스의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 지하 연구시설인 그림젤 연구소(GTS) 입구가 있는 수력발전소(KWO) 앞에서 방문객들이 지하 연구소로 들어가기 전 설명을 듣고 있다. 그림젤 연구소는 알프스 산맥 해발 1700m에 위치한 KWO 입구에서 차를 타고 1㎞가량 땅굴을 따라 들어가면 나온다.

이전이미지다음이미지

사용후핵연료. 거의 영구적으로 봉인해야 한다는 이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을 어디에 어떻게 처리할지는 전 세계 원전 운영 국가 모두가 안고 있는 난제다. 원전 중단을 결정한 독일도 고준위 방폐물 처분장에 대해서는 아직 최종 해법에 도달하지 못한 상태다. 반면 원전 가동 시작과 함께 폐기물 처분 방법 연구를 시작해 최종 처분 부지를 마련했거나 건설에 들어간 국가도 있다. 그중에서도 원전을 가동한 지 38년이 넘어서야 고준위 방폐물 최종 처분 문제를 본격적으로 논의하기 시작한 한국은 특히 갈 길이 멀다. 출발이 더딘 만큼 앞서 논의를 시작한 해외 사례들은 한국의 해법 찾기에 좋은 모델이 될 수 있다.

스위스는 핀란드, 스웨덴과 함께 고준위 방폐물 영구처분 방안 연구에 있어 매우 앞서 있는 국가로 꼽힌다. 1969년 원전 가동을 처음 시작한 스위스는 이듬해인 1972년 방사성폐기물 관리 연구를 위한 공동조합 나그라(NAGRA)를 출범시켰다. 이후 정부는 정치경제적인 고려를 완전히 배제한 채 방폐장 안전을 최우선 가치로 내세우고 투명한 조사를 함으로써 국민의 신뢰를 얻었다. 국민들도 원전을 이용하는 한 원전에서 나올 수밖에 없는 사용후핵연료 처분 문제는 누군가 해결해야 한다는 책임감과 공감대가 있었기 때문에 순조로운 결론에 다다르고 있다. ‘원전으로 이익을 봤으면 결과도 책임져야 한다’는 국민 의식이 깔려 있다는 것이다.



국가가 책임지고 ‘가장 안전한 곳’ 찾는다

지난달 22일 찾은 그림젤 연구소는 나그라가 31년 전 방폐물 처분에 적합한 장소와 방식을 찾기 위해 설립한 연구소다. 연구소는 스위스 베른 남동쪽으로 푸른 초원이 휘감고 있는 알프스의 평화로운 풍광 한가운데에 위치해 있었지만 밖에서는 연구소를 전혀 볼 수 없었다. 해발 1700m에 위치한 수력발전소 입구와 연결된 동굴 속 갱도를 따라 차량으로 1㎞가량 들어가서야 연구소 입구가 보였다. 산 정상 기준으로 450m 깊이에 내부는 모두 화강암 바위로 이뤄져 있었다. 사용후핵연료를 완전히 봉인하기에 이보다 더 어울리는 곳이 있을까 싶었다. 하지만 연구소 관계자는 “최종적인 영구처분장과는 무관하다”고 했다.

이곳에선 철저히 연구와 실험만 이뤄진다. 연구를 관장하는 잉고 블레쉬미트 박사는 “그림젤은 앞으로도 영구처분 부지가 될 계획은 없다”면서 “그림젤은 고준위 폐기물 실험에 최적의 장소지만 알프스 산맥이 여전히 활동하고 있어 수십만 년 후까지 안전해야 하는 영구처분장으로는 적합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림젤 연구소 부지의 안정성은 고준위 방폐물을 다루는 실험과 연구에는 적합하지만 100만년의 세월을 견뎌야 하는 영구처분장으로는 합격점을 못 받았다는 얘기다.

스위스는 화강암반을 연구하는 그림젤 외에 점토암 지층을 연구하는 몬테리 연구소도 운영해 왔다. 그 결과 스위스 상황에서는 화강암보다 점토암층이 최종처분장에 적합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부지 선정 과정은 백지상태에서 시작됐다. 나그라는 스위스 전 국토를 대상으로 지질 적합도를 조사해 적합 지층을 1단계로 추렸다. 이후 암반 생성 환경과 장기적 안정성, 방폐물 처분시설 건설 적합도, 지질학적 안정성 등 4가지 요소를 검토한 끝에 6곳의 후보지를 선정, 2011년 연방정부의 승인을 받았다. 이 단계까지 어떤 경제적·정치적 요소도 고려되지 않았다는 게 나그라의 설명이다.



국민들 ‘원전에 방폐장은 필수’ 인식 확고

지역주민 의견 수렴은 그 다음에 이뤄졌다. 후보지 공모를 받아 그중에서 안전한 지역을 선정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방식인 셈이다. 6곳 후보지와 관련된 지자체, 단체 등 의견수렴 대상만 200여곳에 달했다. 수많은 공청회나 토론 과정에서 보상 요구, 극렬한 반대시위 등은 없었다. 후보지로 꼽혔던 한 지자체는 숲 보호 등 환경적인 이유로 후보지역 선정을 반대한 대신 그 지자체 내 다른 지역을 대안으로 제시했다고 한다.

원전이나 방사능에 대한 반감이 다른 나라보다 낮기 때문은 아니다. 오히려 스위스는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기점으로 ‘탈원자력 정책’을 선택한 국가다. 현재 전력 수요의 38%를 차지하는 원자력 발전을 설계수명에 따라 단계적으로 폐쇄하면서 에너지 시스템을 개편한다는 계획이다. 블레쉬미트 박사는 “당연히 고준위 방폐물을 두려워하거나 꺼리는 반대 여론이 있다”면서 “그러나 원전에너지의 혜택을 받은 만큼 그로 인한 방폐물을 처리할 책임이 있다는 공감대가 확고하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에 영구처분장 부지 선정 책임과 권한을 준 것”이라고 설명했다.



1972년부터 준비…2060년 가동 예상

현재 스위스의 고준위 방폐물 영구처분장 부지 선정 작업은 막바지 단계다. 나그라가 선정한 6개 후보지 중 노르도스트와 주라오스트 등 두 곳이 최종 후보지로 압축됐다. 최종 결정은 정부가 내리도록 돼 있지만 그 결정은 다시 국민투표에 부쳐진다. 마지막 단계라고 하지만 아직 끝이 아닌 셈이다. 스위스는 2020년쯤 최종 부지가 결정되고 다시 국민투표에 부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한다. 국민투표에 부치기 전까지 지자체와 주민 대표, 단체 등과의 의견수렴 과정이 추가로 필요하기 때문이다.

국민투표를 통과하더라도 결정 부지에 대한 적합성 연구가 또 진행된다. 이 연구 결과에 이어 건설 허가가 나오고, 실제 영구처분장이 마련돼 사용후핵연료 처분을 시작하는 것은 2060년 이후에나 가능할 전망이다. 이 같은 시간 계획은 국내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나그라 측 계획은 2060년이지만 실제 가동 시점은 안전성 검토, 의견수렴 과정 등으로 인해 얼마든지 더 늦어질 수 있다고 설명한다.

원자력환경공단 관계자는 “1972년부터 연구하고 준비해 온 스위스는 결국 최종처분장 건설에 100년 가까이 투입하는 것”이라면서 “안전에 대한 철학과 함께 한국에 남은 시간이 얼마나 부족한지도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림젤(스위스)=글·사진 조민영 기자

mymin@kmib.co.kr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