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한신갑] 노벨상 뉴스 기사의 사진
신문에 실리는 ‘뉴스’는 말 그대로 새것이어야 한다. 밤새 세상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오늘은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해하며 신문을 펼쳐 드는 독자 입장에서 기대하는 것이 바로 이 새것, 새 소식으로서의 뉴스다. 신문을 하루 단위로 보면 이 기대는 별 문제없이 충족된다. 오늘 신문에 실린 것들은 어제 신문에 실린 것들과 달라 보인다. 하지만 한 해를 단위로 보면, 이런 기대와 어긋나는 것들이 눈에 띈다. 매년 같은 시기에 실리는 비슷한 내용의 기사들 때문이다. 전형적인 예가 지난 추석 무렵에 읽은 기사들이다. 차례상 물가, 명절 과일 작황, 전통시장 경기, 열차표 예매, 고속도로 상황.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들었던 얘기고, 읽었던 기사들이다. 이런 눈으로 신문을 읽는 독자라면 달력을 보고 내일 신문에 어떤 기사가 실릴지 절반쯤은 예측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 예측대로 금년에도 어김없이 이달 초에 노벨상 관련 기사들이 실렸다. 새롭게 영예를 안은 수상자들이 발표되고, 업적을 소개하는 기사들이 실리는 것이 내용상 새로운 것이라면, 그와 관련해 실린 사설이나 칼럼, 해설 기사들은 그렇지 못하다. “왜 한국은 (이번에도) 받지 못했을까” 하는 질문을 중심에 두고 비슷비슷한 내용의 글들이 여러 곳에 실렸는데, 작년 이맘때 신문을 찾아 살펴보면 그때도 거의 같은 내용의 글들이 실렸었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다 옳은 얘기고, 다 좋은 얘기다. 그런데 5년 전에도, 10년 전에도 같은 얘기였다. 대학교수가 ‘노벨상 뉴스’라는 제목으로 쓴 이 글에서도 대부분 독자는 아마 그런 내용을 예상했을 것이다.

물론 어떤 얘기들은 하고 또 해야 한다. 주기적, 반복적으로 환기시켜야 한다. 이런 기억의 노력이 계속 필요한 이유는 망각의 힘 때문이다. 기억 대 망각의 축은 결국에는 망각 쪽으로 기운다. 속도와 시간에 차이가 있을 뿐 이 비대칭의 틀을, 그것이 만들어내는 망각 곡선의 형태를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망각의 편에는 시간의 흐름이라는 막강한 무기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흐름을 거스르려는 노력, 즉 잊지 않기 위한 노력의 성공 사례를 찾기는 쉽지 않다. 문제의 심각성과 중요성을 공론장 전면에 세워두려는 노력이 사회운동으로 조직되고 유지되어 실천에 옮겨진 흔치 않은 사례의 하나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다. 이제는 너도나도 관심을 갖고 있지만 사실 지금 같은 여론의 확산과 결집은 1992년 1월에 시작한 ‘수요 시위’가 무려 1000번 넘게 열리고 나서야 이끌어낼 수 있었다. 문제에 대한 관심을 일회적인, 휘발적인 것이 아니라 지속가능한 형태와 무게로 묶어낸 결과이다. 노벨상에 관한 얘기처럼 1년에 한 번씩 같은 얘기를 잠깐 하고 나서는 잊고 있다가, 다음 해에 또 같은 말을 반복했던 것이 아니라, 그 문제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두고 그것을 구체적인 행동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틀을 짰기 때문이다.

기초 학문이 중요하다는, 창의성을 키워야 한다는, 장기적 투자가 필요하다는, 지금처럼 해서는 안 된다는 이 지당한 말씀들을 1년에 한 번씩 하고, 또 듣고만 말 것이 아니라, 금년에 한 얘기와 내년에 할 얘기가 조금이라도 달라질 수 있도록 실질적 변화를 만들어 내고, 그 변화가 다음 단계의 변화로 이어지는 연쇄반응을 일으킬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뜻을 모으고, 행동으로 엮어내, 제도적 틀을 만들어야 한다. 같은 말을 반복하면서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지 말자는 것이다.

매년 이맘때 이런 말씀을 하시는 분들의 진정성을 의심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 진정성은 번번이 실수를 반복하면서 그때마다 착하게 살겠다고 다시 다짐하는 피노키오의 진정성과 다르지 않다. 반복을 거듭하면서 결과적으로 냉수 한 그릇만 못한 빈말이 되고 만다. 이 진정성을 실효성과 짝 지워야 한다. 그래서 논의 차원을 문제의 중요성에 대한 원칙적인 것에서 실천 가능성에 대한 구체적인 것으로 바꿔놓아야 한다.

누가 될지는 모르지만 내년 10월에도 노벨상 기사는 실릴 것이다. 하지만 이 예측은 여기까지만 맞았으면 좋겠다. 내년 10월의 신문에서는 금년 10월에 읽은 것과 똑같은 진정 어린 말씀을 더 보지 않았으면 한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말씀을 들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될 수 있는 경우는 두 가지다. 하나는 우리 중 누군가가 2017년 노벨상을 받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동안 계속 말로만 해오던 것들을 실천에 옮기는 것이다. 나는 두 번째가 더 중요한 일인 것 같다. 설사 첫 번째가 이루어지더라도 계속해야 할 일이기도 하다. 그동안 계속 들어온 말씀대로라면 첫 번째는 두 번째 것이 이루어지면 당연히 따라오는 효과이기 때문이다.

한신갑(서울대 교수·사회학과)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