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人터뷰] 서울시 2대 총괄건축가 김영준 “서울 아파트는 외딴섬, 단지만 있고 동네가 없다”

[인人터뷰] 서울시 2대 총괄건축가 김영준 “서울 아파트는 외딴섬, 단지만 있고 동네가 없다” 기사의 사진
김영준 서울시 총괄건축가가 21일 서울 이화동 ㈜김영준도시건축 사무실에서 서울이란 도시가 지향해야 할 모습을 설명하고 있다. 그는 "자기만의 오아시스 같은 건축은 도시에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서영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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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에 '총괄건축가(City Architect)'란 직함이 생긴 배경에는 지금 서울광장 앞에 서있는 시청 건물이 있다. 새로 짓는 시청의 중요성을 알기에 시는 할 수 있는 건 다 해봤다. 보완에 보완을 거듭했지만 '최악의 현대건축물'이란 평가를 받았고, 시민 절대다수가 싫어한다는 조사 결과도 있었다. 어디서 잘못됐는가. 원인을 분석하던 서울시는 2012년 공공건축가 제도를 도입했다. 민간 전문가 77명을 위촉해 공공시설과 정비계획 입안 단계부터 참여케 했다. 건축정책위원회를 만들고, 건축의 공공성을 강조한 서울건축선언도 발표했다. 그리고 2014년 승효상(64)씨를 초대 총괄건축가에 임명했다. 2년 임기가 끝나 이달 초 김영준(56)씨가 2대 총괄건축가로 바통을 이어받았다. 서울 이화동 사무실에서 21일 그를 만났다.


금의 새 시청사는 어디서 잘못됐나.

“턴키(turnkey·일괄입찰)란 제도 때문이었다. 설계부터 시공, 감리까지 건설사에 한꺼번에 맡기는 방식을 적용했다. 경제가 급속히 팽창하던 산업화 시대에 뭔가 빨리 만들려고 쓰던 제도다. 큰 편차가 없는 도로 같은 걸 만들 때는 도움이 되겠지만 시청에 적용하니 공공성 상징성 역사성 등이 제대로 구현되지 못했다. 여러 번 보완하다 장고 끝의 악수가 돼버렸다.”

신청사 설계자로 알려진 건축가 유걸씨는 디자인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개념설계만 했다. 정작 건물을 짓는 기본설계부터는 거의 참여하지 못했다. 그는 “턴키는 결코 좋은 건축물을 만들어낼 수 없는 방식”이라고 말했다. 서울시는 2012년 ‘턴키 발주’ 중단을 선언했다.



-그럼 총괄건축가는 어떤 역할을 하나.

“시청 문제 이후 건축계에서 대안을 모색할 때 리서치를 제가 했다. 베를린 바르셀로나 마드리드 네덜란드 런던 등의 총괄건축가를 인터뷰하고 세 측면에서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정치적 역할, 시대적 역할, 통합의 역할이다.

시청 사례는 시대적 역할의 필요성을 말해준다. 도시는 산업혁명 이후 팽창을 거듭해오다 새로운 국면에 놓였다. 유럽에선 ‘쪼그라드는 도시(shrinking city)’란 개념이 나오는 상황이고, 서울도 인구 감소세에 접어들었다. 팽창의 시대가 끝났다는 건 토목의 시대가 저물었음을 뜻한다. 서울은 건축 물량이 토목 물량을 역전한 지 오래됐다. 시청 턴키 발주는 건축의 시대에 토목의 방식을 고집한 것이다. 제도와 조직은 시대가 바뀌어도 살아남아 불협화음을 일으킨다. 이를 최소화하는 게 총괄건축가의 몫이다.”

정치적 역할은 시장마다 관심이 다른 상황에서 그 도시에 필요한 정책적 관점을 제시하는 일이라고 했다. 통합의 역할을 설명하면서는 서울역 고가도로를 예로 들었다. 그는 이를 걷는 길로 바꾸는 ‘서울역 7017’ 프로젝트를 총괄하고 있다.

“도시 행정에는 조경 건축 토목 등 여러 영역이 있다. 누가 하느냐에 따라 프로젝트 성격이 달라지는데 서울역 고가도로가 딱 그런 문제였다. 조경에선 공원화로 생각하고, 토목 파트는 길로 해석한다. 지금 필요한 건 공원도, 길도 아니고 그냥 살아가는 공간이다. 칸막이를 넘어 통합적으로 접근할 사람이 필요하다.”



-이 제도의 성공 사례를 꼽자면.

“바르셀로나. 안토니 가우디가 생전에는 바르셀로나인들에게 배척받은 건축가였는데 지금 가우디 때문에 찾아오는 사람이 연간 400만명쯤 된다. 그걸 보면서 도시건축에 일찍 눈을 떴고, 1992년 올림픽을 개최하며 굉장히 중요하게 다뤘다. 총괄건축가가 시장의 러닝메이트로 선거에 나서기도 한다. 도시 디자인에 목을 걸고 살아간다는 느낌까지 준다.”



-좋은 도시건축은 어떤 것인가.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는 독특하고 멋있는데, 진입로가 브리지를 타고 들어가게 돼 있다. 브리지를 올리면 주변과 단절되는 옛날 성 같은 모습이다. 그렇게 삶의 주변 공간에서 고립되는 방식은 도시 건물의 자세가 아니다. 허허벌판 같은 데라면 그래도 좋은데, 동대문처럼 복잡한 맥락을 가진 땅에선 주변 건물을 감싸주는 건축이 필요하다. 도시에서 새 건물은 앞에도 건물, 뒤에도 건물인 땅에 끼어들어야 하는 숙명을 갖고 있다. 자기만의 오아시스를 만드는 건축은 더불어 사는 공간에 맞지 않는다.”

그는 경기도 파주 출판도시를 만들 때 승효상씨와 함께 건축코디네이터를 맡았다. ‘공동체의 삶이 결핍된 공동주거 관습의 탈피’라는 설계지침을 제시했다. 최근 서울에 직접 지은 건물에도 같은 의도가 담겨 있다.

“인접한 네 필지에 비슷한 일을 하는 네 회사가 쓸 건물 네 채를 한꺼번에 지었다. 건물주들 동의를 얻어 같이 쓸 수 있는 공간, 얽혀 사는 구조로 만들었다. 저 회사로 들어가 우리 회사 4층 사무실로 갈 수도 있는 구조다. 공동의 삶은 불편함도 많은 법이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을 보면 터놓고 사니까 쉴 때 누가 들이닥치고 하지 않나. 입주 초기엔 그런 혼란이 있었다. 그렇다고 담을 쌓자니 포기해야 할 편의성이 또 크다. 그렇게 내 공간보다 같이 쓰는 공간을 확대해 불편함을 조정해가며 살아가는 게 도시에 더 맞는 것 같다.”



-서울의 보편적 공동주택인 아파트는 어떤가.

“북유럽처럼 세금 많이 내고 많은 혜택을 나눠 갖는 고(高)부담 고복지 사회가 있는 반면에 세금 적게 내고 각자 알아서 살아가는 저(低)부담 저복지 사회도 있다. 우리는 전형적인 후자였고, 아파트 문화에 고스란히 반영돼 있다. 모델하우스에 가보라. 내가 들어갈 집이 어떻게 생겼는지 평면구조만 따진다. 만드는 사람도, 사는 사람도 주변에 대한 관심은 보이지 않는다. 아파트 단지만 있고 동네는 없다.

1970년대 지은 반포 주공아파트는 단지와 도로 사이에 가로(街路)형 상가가 길게 늘어서 있다. 사람들이 가게들을 따라 걷고 기웃거리니 아파트와 동네가 만나는 접점이 된다. 이후에 지은 아파트들은 단지 한켠에 건물 짓고 상가를 그 안에 몰아넣었다. 아파트 단지가 하나의 섬이 되고, 단지와 단지가 서로 등 돌리는 구조가 됐다. 반포 아파트는 외국 것을 베껴 와서 그런 모습을 가졌고, 이후엔 우리 사회의 각자도생 논리가 작용했다. 이런 식의 개발은 개인의 공간을 얻겠지만 도시는 잃어버린다. 압구정동 아파트를 지구 단위 계획을 통해 재건축하려는 건 그런 모습을 바꿔보자는 뜻이다.”



-서울역 7017 프로젝트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고가도로 자체는 내년 4월 완성되는데, 1단계 마무리로 보면 된다. 서울역 주변 도시재생 작업은 계속 진행될 것이다. 이 프로젝트의 목적은 보행로 하나를 만드는 게 아니라 서울역에 그걸 만들어서 주변 지역에 변화할 동기를 부여하는 것이다.

요즘 도시개발은 좁고 긴 공간을 다루는 게 굉장히 많다. 청계천도, 경의선 숲길도, 경부고속도로 도시구간 지하화 구상도 그렇다. 세계적 현상이다. 마드리드는 내부순환도로를 전부 지하화해 거대한 띠 공간을 조성한다. 산업화 과정에서 만든 교통 인프라가 걷는 도시의 시대에 새로운 용도로 바뀌는 것이다.

좁고 긴 공간은 주변과의 연결이 더 중요하다. 청계천도 인공하천에 집중하지 말고 주변을 더 의식했다면 지금과 달랐으리라 본다. 서울역 고가에 중림동 퇴계로 한양도성 등 주변과 잇는 17개 보행길을 만드는 건 그 때문이다.”



-광화문광장을 놓고 말이 많다.

“광장이라 부르기 애매한 하나의 섬이 돼 있다. 도시공간이라 말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어떻게든 정비해야 한다. 육조거리를 만들자, 한쪽에 붙이자, 지하화하자 등 얘기가 많은데 광화문포럼을 구성해 다듬는 중이다.”



-서울은 살기 좋은 도시가 될 수 있을까. 현재 세계 72위라는데.

“나는 희망적이다. 네덜란드 마드리드 런던 등에서 살아봤는데, 서울이 그렇게 나쁘지 않다. 광화문에 사는 친구들이 유모차 끌고 남대문시장 걸어갔다 오는 얘기를 할 정도가 됐다. 조금만 다듬고 같이 사는 동네란 인식이 퍼지면 좋은 도시가 될 수 있다.

우리는 그동안 ‘살 집’을 사는 게 아니라 ‘팔 집’을 샀다. 부동산 논리가 압도했다. 집값 상승 기대가 줄어야 인식이 바뀔 텐데, 그게 가능한 시기에 근접한 것 같다. 그럴 때 새로운 주거정책 방향을 잘 설정해야 한다.”

■서울시 총괄건축가 김영준은

건축가 김수근의 직계 제자 중 한 명이다. 서울대에서 건축학을 전공했다. 그가 김수근의 공간연구소에 입사했을 때 승효상씨가 실장이었다. 이후 승씨의 건축사무소 이로재에서 일하다 런던 AA스쿨에서 유학했고, 세계적 건축가 렘 콜하스의 네덜란드 로테르담 건축사무소 OAM에서 소장을 지냈다. 귀국 후 ㈜김영준도시건축 대표로 활동해 왔다.

㈜김영준도시건축이 있는 서울 이화동 작은 건물은 그가 직접 설계했다. 그의 사무실 위층을 영화 '암살'의 최동훈 감독이 쓰는데, 전에는 박찬욱 감독 사무실이었다. 박 감독의 파주 헤이리마을 자택 '자하재'도 그가 지었다. 미국 뉴욕 현대미술관(MoMA)은 해마다 세계 중요 건축물을 선정해 모델과 드로잉을 전시한 뒤 영구 소장한다. 2010년 한국 건축 최초로 그의 '자하재'와 승씨의 '수백당'이 선정돼 MoMA에 입성했다.

지난해 서울건축문화제 주제는 '도시재생'이었다. 옛것을 허물고 새것을 짓는 뉴타운식 발상에서 벗어나 건축의 상상력으로 공존의 지혜를 찾자는 취지였고, 그가 총감독을 맡았다. 서울시는 내년 제1회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를 개최한다. 베네치아 런던 로테르담 베이징 등 주요 도시에서 열리는 건축비엔날레에 뛰어들며 서울은 '공유도시'를 첫 주제로 택했다. 사전행사 성격의 서울건축문화제를 맡았던 그는 이제 총괄건축가로 비엔날레를 준비하게 됐다.

태원준 논설위원 wjtae@kmib.co.kr,사진=서영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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