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고승욱] 버락 오바마의 사과 콤플렉스 기사의 사진
2012년 공화당 후보로 미국 대통령에 도전한 밋 롬니는 전당대회 후보수락연설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사과 여행(apology tour)을 하겠지만 나는 일자리 여행(jobs tour)을 다니겠다”고 외쳤다. 그는 “미국은 다른 나라를 억압하지 않았다. 오히려 전 세계를 독재자로부터 해방시켰다”고 민주당 후보로 나선 오바마를 비난했다.

왜 미국 대통령이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사과를 하느냐는 것이다. 롬니는 2010년 ‘위대한 미국에는 사과란 없다(No Apology: The Case for American Greatness)’는 책을 썼다. 미국의 과거 제국주의적 행태를 사과하고 이해를 구한 오바마와 민주당의 외교노선을 비난하는 내용을 담은 책이다.

오바마는 첫 번째 임기 4년 동안 사과 때문에 많은 비판을 받았다. ‘사과 콤플렉스(apology complex)’라는 말도 생겼다. 취임 첫해 프랑스에 가서 “미국은 그동안 프랑스와 유럽에 오만했다”고 했고,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 있는 위성방송 알아라비아와 인터뷰를 하며 “미국은 중동 국가들에 때론 잘못을 했다. 무슬림 세계와 미국이 서로 적이 아니라는 점을 이해하도록 대화하는 게 내 임무”라고 말했다.

그해 4월 열린 미주정상회의에서는 “과거 미국은 중남미 국가와의 약속을 제대로 지키지 못했다”고 반성했다. 오바마는 이런 식의 사과를 임기 내내 계속했다. 재선된 뒤에도 이 노선은 바뀌지 않았다. 임기를 마무리할 때인 지난 5월 태평양전쟁 막바지에 원자폭탄이 투하된 일본 히로시마를 방문한 게 대표적이다. 정치권을 비롯한 미국 내부의 비난과 한국·중국 등 일제 침략 피해국의 거센 반발 때문에 사과를 하지는 않았지만 유일한 원폭 피해국이라는 점을 부각시킨 일본이 충분히 만족할 수준이었다.

사실 미국 대통령은 국민과 정부를 대신해 과거의 잘못을 수시로 사과한다. 1997년 5월 빌 클린턴 당시 대통령은 100세 안팎의 흑인 노인 4명을 백악관으로 초청해 정중히 모신 뒤 이들 앞에서 담화문을 발표했다. 공중보건국이 1930년대부터 가난한 흑인 600여명에게 매독균 생체실험을 벌였던 사실을 인정하고 사과한 것이다. 의회가 나서 과거 노예제를 사과하기도 했다.

이런 사과는 치밀한 계산을 마친 매우 전략적인 행동이다.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는 게 부끄럽지 않다는 데 모두 동감하기 때문이다. 물론 말로 끝나지 않는다. 피해자에게 철저히 배상한다. 어딘가 남아있는 잘못된 시스템을 끝까지 추적해 바꾸는 계기가 된다. 국민은 부끄러움을 털어내고 자부심을 갖는다.

하지만 대통령이 개인적인 잘못을 사과하는 경우는 국가의 위상을 높이기 위한 전략적 사과와 차원이 다르다. 빌 클린턴이 르윈스키 스캔들(지퍼게이트) 때문에 발표한 대국민 사과문은 처절하다. 그는 “저는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치명적인 판단착오였으며 전적으로 개인이 책임져야 할 부적절한 행동이었습니다. 저는 사람들을 기만했습니다. 깊이 후회합니다”라고 밝혔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 열심히 일했으나 의회와 정부 안에 지지하는 사람이 없어 그만둔다는 황당한 연설을 하고 물러난 리처드 닉슨 대통령도 3년 뒤인 1977년 국민에게 사과했다. “제가 저지른 부패가 너무 심했습니다. 국민에게 좌절감을 안기고 젊은이의 꿈을 무너뜨렸습니다. 저는 평생 부담감을 짊어지고 살아갈 것입니다.” 닉슨이 사과 인터뷰를 하기까지 과정은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사과는 이렇게 하는 것이다. 받는 사람이 사과라고 인정하도록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진실성을 의심받는다. 대통령도 당연히 예외가 아니다.

고승욱 국제부장 swk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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