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히스토리] 파업 손배소 '초강력 카드' 뒤엔 90년 최병렬 지침 있었다 기사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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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10월 22일 최병렬 당시 노동부 장관은 “노동운동의 준법질서를 확립하기 위한 대책의 하나로 노조 쪽의 불법쟁의 행위로 인한 손해에 대해서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적극 활용하라”는 지침을 발표했다.

형사에서 민사로

최 장관의 지침은 1년전 경남의 K산업이란 곳에서 벌어진 노사간 손해배상 사건이 계기가 됐다. 89년 7월 K산업이 직원들에게 여름휴가 보너스를 종전보다 줄여 지급하자, 조합원들이 7일간 작업을 거부했다. 회사는 노조위원장과 총무부장을 해고하고 이들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당시 대구지법에서 “목적의 정당성에 관계없이 수단의 정당성을 상실한 파업”이라며 540여만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이 판례를 적극 활용해 다른 회사들도 노조의 파업에 민사 소송으로 대응하라고 노동부 장관이 지침을 내린 것이다.

B가구가 지침에 따른 손배 소송의 첫 사례였다. 1년 전인 1989년 파업으로 21명이 해고됐는데, 그 중 1명이 복직 승소 판결을 받았다. 회사는 해고자들을 상대로 “불법 파업으로 회사가 손해를 입었다”며 5억7000여 만원을 배상하라고 청구했다. 20명의 해직자가 복직을 포기하자 회사는 이들에게는 손해배상을 취하하고 나머지 1명에게만 계속 배상 책임을 짊어지웠다.

수갑에서 가압류로

그 전까지 정부가 노사분규에 개입하는 방법은 조정 과정을 거쳐 공권력을 대규모로 투입하거나 주동자를 형사범으로 처벌하는 방식이었다. 파업 중인 사업장에 전투경찰이 들이닥치거나 노조위원장이 수갑을 차고 수감되는 장면이 자주 보도됐다.

형사 처벌에 기대는 노사분규 해결 방식은 부담이 컸다. 사업장을 점거한 조합원들을 철수시키는 과정은 폭력적일 수 밖에 없었다. 노동자와 고용주 사이의 분쟁에 공권력이 사측 편을 드는 셈이어서 여론의 거부감이 있었다. 주동자를 법정에 세워도 최종 판결까지 시간이 적지 않게 걸렸다. 노조 입장에서도 공권력의 직접적인 탄압은 조합원들을 자극해 극단으로 치닫게 만들었다. 폭력적인 공권력에 대항해 타협보다는 “단결투쟁”을 외쳐야 했다. 결국 노사간의 불신은 더 커지고 대립은 더 격렬해졌다.

형사처벌보다 민사 소송으로 대응한다는 최 장관의 지침은 효과가 컸다. 경찰을 동원해 수갑을 채우기보다 법정에서 돈을 내놓으라고 요구하는 건 신사적으로 보였다. 게다가 판결이 나기 전이라도 회사가 불법 파업 가능성을 시사하는 약간의 근거만 법원에 제시하면 가압류까지 어렵지 않게 받아낼 수 있었다.

갈수록 쉬워진 손배소송

97년 노동법 파동을 거치며 노동쟁의의 개념이 바뀌었다. “임금, 근로시간, 후생, 해고 기타 대우 등 근로조건에 관한 노동관계 당사자 간의 주장의 불일치”로 인한 분쟁 상태였던 것이 로 정의했던 것이 “근로조건의 결정에 관한 주장의 불일치”로 좁아졌다. 해고자 복직이나 단체협약 이행, 부당노동행위 구제 등을 요구하는 파업은 불법이 되었다.

가압류 대상도 다양해졌다. 노조의 적립금 뿐만 아니라 조합원의 재산, 월급, 심지어 신원보증인의 재산까지 압류할 수 있도록 변해왔다.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주체도 사측만 아니라 경찰, 심지어 거래 중인 제3의 기업까지 노조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요구하고 나섰다.

90년대에는 현대차·현대중공업 같은 대기업과 서울지하철공사·한국통신 등 공적 사업장에서도 거액의 손해배상 소송이 노조를 상대로 제기됐다. 정리해고를 받아들이면 소송을 취하하는 등의 방식으로 노조를 노골적으로 압박하는 수단으로 쓰였다. IMF경제위기를 거치면서 손배 소송은 더 늘어났다. 김영삼 정부에서 손배가압류가 이뤄진 곳이 10개 업체였는데, 김대중 정부에서는 89개 업체였다.

잇따른 자살, 시민이 나서다

“재산가압류, 급여가압류 … 이틀후면 급여 받는 날이다. 나에게 들어오는 돈 없을 것이다.”

2003년 1월9일 새벽, 경남 창원 두산중공업의 배달호씨가 월급날을 하루 앞두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벌어졌다. 하루 전날 쓴 유서에는 파업으로 인한 손배가압류를 비판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이를 계기로 손배가압류 문제에 비판적인 여론이 확산됐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에서는 노동법 개정안을 내놓고, 정부도 “불법파업이라도 비폭력일 때는 손배 가압류를 제한하겠다”고 발표했다. 노사정위에서 합의도 했다. 그러나 2009년 쌍용차 사태 때에는 경찰과 손해보험사가 나서서 노조를 상대로 손배를 제기했고, 2011년 유성기업 파업 때에도 경찰은 노조에 손배가압류를 했다. 2012년 한진중공업 노동자 최강서씨는 “태어나 듣지도 보지도 못한 돈 158억원. 돈이 전부인 세상에 돈이 없어서 힘들다”는 말을 남기고 목숨을 끊었다. 158억원은 한진중공업이 노조에 청구한 손해배상 금액이었다.

2014년 쌍용차 노조에 47억원의 배상 판결이 내려지자, 시민들이 나서서 배상금을 지원하자는 노란봉투 운동이 벌어졌다. 가수 이효리가 노란봉투 운동에 동참하면서 시민의 참여가 크게 늘어나면서 노조를 상대로 한 손배가압류가 다시 이슈가 됐다. 손배가압류로 어려움을 겪는 노동자를 돕기 위해 ‘손잡고’라는 시민단체도 결성됐다.

민법 750조

손해배상 요구의 근거가 되는 민법 제 750조는 “고의 또는 과실로 인한 위법 행위로 타인에게 손해를 가한 자는 그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법조항을 소비자가 이용하기는 쉽지 않다. 기업의 잘못으로 소비자가 생명의 위협까지 받아도, 어떤 위법 행위가 있었는지 소비자가 증명해야 한다. 기업의 불법 행위가 밝혀지더라도, 소비자들이 일일이 소송을 제기하지 않으면 배상을 받지 못한다. 소송에 들어가면 기업은 수억원을 들여 유능한 변호사들을 기용한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나 마찬가지다. 옥시 사태 같은 사건이 벌어져도 정부조차 어쩌지 못한다. 3심까지 가다보면 긴 세월을 견디지 못하고 소비자가 먼저 나가떨어지기 십상이다.

소비자에겐 한없이 까다로운 민법 750조지만, 노동자에게 적용될 때는 이야기가 달랐다. 민주노총과 손잡고에 따르면 올해도 전국 20개 업체에서 1521억원의 손배소송이 제기됐고, 가압류 금액은 144억원에 이른다.

선진국은 노동쟁의에 손배소송을 제기하는 것을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다. 독일 프랑스 영국 일본 중 노동자들의 파업을 국가가 처벌해야할 형사 범죄로 규정한 나라는 없고, 파업 중의 폭력 해우이는 그 자체만 형법으로 처벌할 뿐이었다. 민사상 배상 조항은 있지만 사실상 사문화돼 있다.

김지방 기자 fattykim@kmib.co.kr, 그래픽=이석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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