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 토크] 단풍과 시인 기사의 사진
당단풍 나뭇잎. 위키피디아
하루에 40m씩 고도를 낮추며 평균 25㎞ 속도로 북에서 남으로 내려오는 단풍전선. 이 전선 영향 아래 놓인 산들이 서둘러 갈아입은 형형색색의 화려한 가을옷 덕에 우리들 눈이 즐겁다. 눈이 즐거우면 마음이 선해지고, 선함은 곧 마음의 평정을 불러오니 단풍은 매력을 넘어 마력으로 다가오는 자연현상이다. 한여름 넘쳐나던 초록은 간데없고 붉은색에서 갈색, 노란색에 이르는 이 가을 빛깔은 대체 어떻게 나타나는 것일까. 단풍은 기온과 낮 길이 등 외부의 계절 변화 신호에 반응하여 잎에 존재하는 여러 색소의 역할과 등장 시기를 나무 스스로 조절함으로써 나타난다. 여름 동안 가장 왕성한 임무를 수행하는 색소는 광합성에 핵심적 기능을 수행하는 초록의 엽록소이지만, 가을이 되면 엽록소가 분해되고 새로 안토시안이 생성된다. 또한 엽록소의 퇴조로 울창했던 그들의 그늘이 사라지면 카로틴, 크산토필, 타닌 등의 다른 색소들이 잎의 전면에 등장하게 된다.

안토시안은 항산화 작용을 하는 색소화합물로서 pH에 따라 색깔이 바뀌는데 산성에서는 빨강, 알칼리성에선 파란색을 나타내는 색상구배를 지닌다. 비타민A 전구물질인 카로틴은 황적색, 빨강, 보라색 등을 띠고, 광합성 보조색소로서 흡수한 빛에너지를 엽록소에 전달하여 광합성 효율을 높이는 역할을 하는 크산토필은 노란색을 나타낸다. 병충해에 대한 방어기작을 수행하는 타닌은 산화되면 갈색을 띠는 물질이다. 가을철 우리가 여러 가지 단풍 빛깔을 볼 수 있는 까닭은 식물종마다 이러한 색소들의 구성비율이 다르기 때문이다. 몇 가지 물감을 어떤 비율로 섞느냐에 따라 색감이 다른 색상이 만들어지는 것처럼 이들의 차별적 조화가 다양성을 창출해내는 것이다.

듣지 못할 것 같은 나무도 자기 이름을 불러주면 좋아한다. 잎이 손가락 모양인 단풍나뭇과에는 대표적인 5남매가 있는데 이들은 손가락 개수로 쉽게 구분된다. 손가락 3개인 신나무, 5개의 고로쇠나무, 7개인 단풍나무, 9개를 지닌 당단풍나무, 그리고 11개인 것은 섬단풍나무이다. 단풍나무를 만나면 손가락 수 살펴보며 이름 한번 불러주자. ‘네가 당단풍이구나, 겨울 잘 나거라’ 이 한마디에 우리 모두 가을 시인이 된다.

노태호(KEI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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