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폐장 38년 논란 결론내자 <2부>] 스페인, 치열한 경쟁 뚫고 유치한 방폐장… 정치가 발목 기사의 사진
스페인 중부 카스티야 라 만차 지역에 위치한 소도시 카냐스의 사용후핵연료 중간저장시설(ATC) 부지 전경. 이곳은 ATC 부지로 선정됐지만 라 만차 지방의회와의 법적 분쟁으로 관련 절차가 중단된 상태다. 파란 하늘 아래 펼쳐진 넓은 들판에 ATC 부지로 선정된 구역임을 알리는 표지판만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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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수도 마드리드 남동쪽으로 120㎞ 떨어진 소도시 카냐스. 스페인의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중간저장시설(ATC) 부지로 선정된 이곳을 지난달 23일 찾았다. 가는 길은 승용차로 10분쯤 달려야 겨우 차량 한 대 마주칠 정도로 한적했다. 그야말로 광활한 들판 한가운데 숨어 있는 듯한 지역이었다. 마을 안은 한적함을 넘어 적막함이 느껴졌다. 지나는 차도, 사람도 거의 없었다. 작고 퇴락한 마을의 전형이었다. 스페인의 청명한 하늘에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고 있음에도 마을에선 음산함이 느껴질 정도였다.

경제난에 러브콜 방폐장, 정쟁에 미궁

카냐스의 이런 풍경을 보니 역설적으로 이곳이 사용후핵연료를 다루는 시설을 적극 유치했던 이유를 곧바로 이해할 수 있었다. 고용창출이나 중앙정부의 지원 등 ATC 유치에 따른 경제적 효과가 절실한 지역이어서 순조롭게 유치로 이어진 것이다. 주민 수가 적고 땅이 넓어 위험도가 상대적으로 낮다는 점도 ATC 유치 부담을 낮췄다.

특히 스페인 방사성폐기물관리공사인 엔레사(ENRESA)가 본격적으로 ATC 부지 선정 공모를 시작한 2007∼2008년 스페인은 심각한 경제위기에 직면했을 때였다. 무려 14개 지방 소도시가 ATC를 유치하겠다며 공모에 참여했고, 이 중 엔레사가 제시한 기본 조건을 만족한 후보지가 8곳이었다. 이들을 대상으로 기술적 시뮬레이션을 진행한 결과 2011년 중부 카스티야 라만차 지방에 위치한 카냐스가 선정됐다. 엔레사의 마리아노 몰리나(사진) 국제홍보팀장은 “당시 공모에 참가한 14개 지역이 모두 경제 기반이 약한 중소지역이었다. 경제위기 상황에서 부지 선정에 따른 경제적 효과 기대가 높았다”며 “이후 기본 조건에서 합격점을 받은 8개 후보지 중 주민 신뢰도가 가장 높은 카냐스가 최종 선정됐다”고 설명했다.

엔레사는 이후 카냐스에 대한 지질·지형 연구를 진행했고 2014년 건설 승인을 받았다. 지역 공모 신청을 받지 않고 먼저 지질·지형 조사를 해 사용후핵연료 영구처분 부지를 일단 선정하는 핀란드, 스위스 등과는 달리 경제성과 주민수용성을 우선하는 방식이다.

지방정권 바뀌자 법정 분쟁 혼란

몰리나 팀장은 “ATC는 최종 처분시설이 아닌 중간시설이다. 최종 처분 부지 선정 때는 공모 방식이 좀 달라지고 절차도 추가되지 않겠느냐”면서 “다만 스페인의 정치지형상 지역 수용성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중앙정부와 자치 지방정부가 분리돼 있는 스페인 정치구조상 집권 정부가 서로 다를 경우 정책 추진이 쉽지 않고 갈등이 많다는 것이다.

카냐스 ATC 건설 사업도 이로 인해 난관에 부닥친 상태다. 정부의 최종 건설 허가를 받기 위한 원자력규제위원회(CSN) 평가와 환경영향평가 보고서를 작성하는 마지막 단계에서 카냐스가 속해 있는 지방정부 카스티야 라만차의 집권당이 바뀐 것이다. 라만차 자치 정부는 지난해 조류보호구역(ZEPA)의 범위를 넓히겠다는 결의안을 통과시켰고, 이로 인해 ATC 부지가 보호구역에 들어갔다. 사실상 중간처분시설을 건설할 수 없게 한 것이다. 스페인 연방정부는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고 법적 분쟁이 1년 넘게 진행되면서 사업은 표류하고 있다. 더욱이 스페인 지난해 12월 총선 이후 10개월 가량 지금까지 내각 구성을 못해 정국이 혼란스러운 상태였다. 연방 정부와 지방 정부의 혼란 속 작은 소도시인 카냐스는 모든 것이 정지됐고, ATC 부지만 바라보는 주민들의 불만은 극에 달하고 있다. 카냐스에 살고 있는 후안 팔렌치아(57)씨는 “연방정부도 지방정부도 모두 ‘바보(fool)’다. 대체 뭘 하려는 건지 모르겠다”면서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카냐스 지역 신문사에서 일한다는 호세 미로(51)씨도 “카냐스 주민들이 사용후핵연료 처분시설을 매우 반기는 것은 아니지만 90% 이상이 찬성한 사안이고, 이 작은 마을에 ATC가 필요했기 때문”이라면서 “그런데 지금은 앞으로 어찌될지 예측도 할 수 없어 답답하다”고 말했다.

“정부 신뢰 없는 ‘경제성’ 논리 한계”

스페인은 정쟁 때문에 길을 잃기 쉬운 방폐장 문제를 경제논리로 주민들을 설득해 호응을 이끌어냈으나 결국 다시 정치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 사례다. 지역경제를 위해 원전 유치를 선택했다가 정치지형 변화로 다시 주민투표 등 법적·정치적 논란을 거듭했던 한국 삼척의 상황과 겹쳐진다. 결국 고준위 방폐물처분장은 전 국민적 공감대와 함께 정부 정책에 대한 근본적 신뢰가 바탕에 깔려야 한다는 교훈을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엔레사에서 주민 홍보와 소통 업무를 맡고 있는 테레사 팔라시오씨는 “스페인은 솔직히 말해 중앙정부의 사업에 대한 신뢰가 약하다는 점이 약점”이라며 “정부 신뢰도가 매우 높은 핀란드에서 사용후핵연료 영구처분장 사업이 가장 빠르게 추진된 것과 반대인 상황”이라고 말했다.

팔라시오씨는 이어 “엔레사는 1985년 국영회사로 만들어졌지만 아직도 우리를 아는 국민은 10%도 안될 정도”라면서 “결국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신뢰를 쌓아가는 것과 처분시설 필요성에 대해 끊임없이 알리고 소통하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마드리드·카냐스(스페인)=글·사진 조민영 기자 mymin@kmib.co.kr, 그래픽=박동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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