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폐장 38년 논란 결론내자 <2부>] 정치·경제적 갈등에 방폐장 겉돌지만… 스페인, 한국과 다른 점은 기사의 사진
정치·경제적 갈등에 방폐장 겉돌지만… 스페인, 한국과 다른 점은 정부와 의회 공감대로 ‘기본계획’ 마련
정치 상황과 지역의 경제적 이해에 따라 방사성폐기물 처분 정책이 표류하고 있는 스페인의 현재 상황은 한국이 걸어온 길과 크게 다르지 않다.

경북 경주의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장은 오랫동안 꼬인 실타래를 풀어낸 국내 첫 성공사례로 꼽히지만 과정을 보면 정치와 지역 논리에 휘둘린 반쪽짜리 시설이란 지적도 나온다.

경주 방폐장은 1986년부터 방폐장 부지를 찾기 시작해 부안 사태 등을 거치며 9차례 후보지를 옮긴 끝에 지난해 가동에 들어갔다. 불신으로 시작된 방폐장 문제는 결국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을 떼어내고 중·저준위 처분장부터 마련하는 것으로 정리됐다.

스페인도 우리와 비슷한 상황인 것처럼 보이지만 방폐물 처분 문제에선 현재 한국보다 한 발 앞서 있다. 이미 2006년 사용후핵연료를 포함한 고준위폐기물을 중앙집중식으로 직접 처분한다는 방침을 담은 방사성폐기물 종합계획을 마련했다. 반면 한국은 아직 사용후핵연료 관리 방식에 대한 합의도 이뤄지지 않은 상태다.

정부에 대한 국민 신뢰가 높지 않은 스페인이 고준위폐기물 처분 방식을 비교적 빨리 마련한 계기는 뭘까.

아이러니하게 그 배경에도 정치가 있었다. 2004년 스페인에서 오래된 원전 폐쇄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원전 폐쇄를 공약으로 내세운 중도 좌파도 등장했고, 이 논의는 자연스럽게 사용후핵연료 처분 문제로 이어졌다. 찬반 양측이 모두 고준위폐기물 처분 시설 필요성에 동의하면서 그해 스페인 의회는 만장일치로 ‘고준위폐기물 집중저장시설 마련’을 촉구하는 권고안을 채택했다. 의회가 적극 나서면서 방사성폐기물 종합계획과 중간부지 공모 작업 등은 자연스레 속도가 붙었다.

물론 스페인의 방폐물 종합계획도 최종 처분시설 문제에 대해선 명확한 방침을 담지 못하는 등 한계가 있다. 그러나 시급한 고준위 방폐물을 각 원전 부지에 방치하지 않고 국가 차원에서 해법을 찾기 위해 정치가 나선 것은 한국에 던지는 시사점이 크다.

한국에서 방폐물 관리 정책 마련을 위해 의회가 적극 움직인 경험은 거의 없다. 그나마 부안 사태를 겪은 뒤 노무현정부 시절 고준위 방폐물과 중·저준위 방폐물을 분리해 관리하는 법안을 통과시킨 정도다.

전문가들은 늦게나마 정부가 고준위 방폐물 관리 기본계획(안)을 마련한 만큼 국회가 이를 수용해 적극적인 논의를 진행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원자력안전 정책 자문을 하고 있는 한 교수는 “정부안이 완벽하다고 볼 수는 없지만 최소 수십년이 걸리는 고준위 방폐물 관리 정책을 마련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며 “향후 계획을 법으로 명시해 놔야 정치가 바뀌어도 꾸준히 진행될 수 있기 때문에 국회 차원의 본격적인 논의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책임 있는 국회라면 정부안이 문제가 있을수록 더 적극적으로 심의하고 보완해야 한다”면서 “솔직히 제대로 된 공론화가 안 된 상황이기 때문에 국회 심의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공론화 과정을 거치는 것도 방법”이라고 덧붙였다.

마드리드·카냐스(스페인)=조민영 기자 mymin@kmib.co.kr, 그래픽=박동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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