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박형준] 대통령제의 위험 기사의 사진
최순실 사건의 충격 속에 정치학자 후안 린츠(Juan Lintz)를 떠올렸다. 대통령제의 위험을 이론화한 학자로 유명한 사람이다. 그는 대통령제가 여러 면에서 민주주의와 어울리지 않는 제도라는 점을 실증했다. 그에 의하면 대통령제는 국민이 뽑은 두 개의 권력, 대통령과 의회의 충돌로 정치불안을 야기한다. 그 때문에 입법과 정책의 효율성도 떨어진다. 대통령제는 권력의 승자독식을 대통령 귀에 끊임없이 속삭인다. 대통령제에서 권력 남용이 일어나지 않는 예는 드물다.

사실 대통령제를 채택하고 있는 전 세계 90여개국 가운데 상당수는 독재국가이고, 민주적 대통령제를 가지고 있는 나라 가운데 정치불안과 갈등이 심하지 않은 나라를 찾기는 어렵다. 부정부패와 권력형 비리도 대통령제가 내각제보다 훨씬 심하다. 흥미롭게도 상식적 예상과 달리 대통령제가 내각제보다 ‘의회의 비만도’도 심하다. 행정부 주도 체제이지만 의회에 강력한 견제 권한을 주는 대통령제에서는 대통령 권한이 큰 만큼 의회의 권한도 커진다. 국회 사무총장으로 있으면서 전 세계 의회를 살펴보니 대통령제 의회가 내각제 의회보다 기구가 크고 사람도 많았다. 국회의원 보수도 높고 보좌관 수도 훨씬 많았다. 행정부 견제라는 명분으로 조직과 권한을 계속 늘리기 때문이다.

대통령제의 성공 모델이라 일컫는 미국조차 정치의 진화보다는 퇴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이코노미스트가 지적했듯 대통령제의 문제는 훌륭한 리더가 아니라 인기 있는 리더를 선출하게 된다는 점이다. 대통령으로 뽑힌 사람이 위대한 지도자일 성공 확률보다는 이류 지도자일 실패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이번 미국 대통령 선거도 이런 위험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대통령 선거가 최선의 리더를 뽑는 것이 아니라 차악의 리더를 선택하게 되는 예들을 우리는 곳곳에서 목도한다.

한국의 대통령제는 특히 유별나다. 5년 단임제는 한국만의 독특한 제도다. 장기 집권을 막자는 의도에서 4년은 너무 짧고 6년 이상은 너무 길다는 생각에서 5년으로 한 것이다. 게다가 대통령 권력은 3권 분립에도 불구하고 권위주의 체제만큼이나 집중되어 있다. 인사 정책 외교 등에서 모든 결정이 대통령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하듯 모든 길은 대통령으로 통한다. 때문에 정치도 ‘대통령 만들기 정치’가 다른 모든 정치를 지배한다. 5년 만에 한 번씩 서는 큰 장에서 ‘싹쓸이’하기 위해 올인하는 것이다. 대통령이 되려는 사람 주변에 사람이 모여들고 그를 둘러싼다.

대통령 만들기가 어디 쉬운 일인가. 온갖 수난과 고통을 감내하면서 대통령이 된 사람과 그 측근들에게 권력이 자신을 파괴할 수 있는 위험물임을 이해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무리다. 당선된 이후 국민이 준 권력의 공적 사용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성찰하는 대통령과 그 측근들을 본 적이 있는가. 불행히도 없다. 그보다는 이제 최고가 되었다는 나르시시즘에 빠져 권력이란 전리품을 즐기는 데 몰입한다. 권력을 손에 넣었다는 그 성취감이 권력의 공공성과 사유화 사이의 경계를 흐릿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것이 측근 비리가 늘 반복되는 이유다. 물론 턱도 아닌 사람들이 국정의 공적 시스템을 짓밟고, 아무리 돈이 있고 백이 있어도 건드릴 수 없었던 보루였던 대학입시까지 주물렀다는 점에서 이번 경우가 최악이지만 말이다.

그나마 대통령이 이 문제 폭발 직전에 개헌의 문을 열어준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리고 정략적 의도를 의심받았던 청와대가 이 사건으로 사실상 개헌 주도력을 잃었다는 것은 오히려 잘된 일이다. 개헌의 공이 국회와 국민의 품으로 넘어왔기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혹시라도 정권 잡는 데 방해가 될까봐 개헌 논의 자체를 묻으려 한다. 하지만 오늘 대한민국이 처해 있는 큰 구조적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열쇠로서 정치 개혁을 숙고하는 사람들에게 개헌이라는 이슈를 우회할 방법은 없다. 대통령 되려는 생각에만 꽂혀 개헌을 막는 이들은 역사의식도, 문제 진단 능력도 없는 사람들이다. ‘대통령병’ 환자들에 불과하다. 이미 대선 캠프에 들어가 ‘권력 잡기 게임’에 매몰된 일부 지식인들이 이번 사건을 빌미로 개헌이 물 건너갔다고 외치는 것은 또 다른 곡학아세다. 국가 체제의 민주성과 효율성이 다 고장났다면 그것을 치유할 근원적 처방을 고민하는 것이 지식인의 도리다.

지금 거론되는 대통령 후보 중 누구를 뽑은들 5년 단임 대통령제의 시스템과 구조에서 오는 문제를 넘어설 수 있을까. 단언컨대 없다. 그래서 개헌은 물 건너간 것이 아니라 물 건너오고 있다.

박형준 (동아대 교수·전 국회 사무총장)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