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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풍향계-이준한] 대한민국이 살아남는 길

“적당한 사과나 돌려막는 인적교체로 될 일 아니다… 검찰이 존재이유 보여줘야”

[시사풍향계-이준한] 대한민국이 살아남는 길 기사의 사진
이때까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이렇게 참담하고 수치스러운 적이 없었다. 미국의 공영방송 NPR은 “마치 꼭두각시를 조종하듯 막후에서 왕의 권위를 누렸다”고 보도한다. 그들의 눈에는 최순실이 왕이었고 대통령이 꼭두각시였다. 뉴욕타임스도 “샤머니즘적 주술이 느껴진다”고 진단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한국인은 대통령이 ‘돌팔이’로부터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한다”고 보도하는 상황이다. 최순실 게이트는 국민을 모욕하고 대한민국에 먹칠을 했다.

어제 발표된 대통령 지지율이 9.2%라고 해도 놀랄 국민이 많지 않을 것이다. 여론조사기관 디오피니언이 10월 31일 전국 성인 남녀 1000명을 조사한 결과다. 역대 대통령 지지율을 분석한 논문을 미국의 저명 학술지에 게재했던 필자는 외환위기 당시 김영삼 대통령의 주간 지지율이 이와 비슷한 수치였고, 임기 말 노무현 대통령의 주간 지지율이 10%를 갓 넘은 적이 있다고 기억한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은 더 떨어질 가능성이 있다. 아직 최순실 게이트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국민은 박근혜의 능력과 비전 과 공약을 믿고 대통령으로 선택했다. 그런데 정작 뒤에서 강남 아줌마 하나가 국가의 법도를 무시하고 공사의 경계를 허물어 국정을 좌지우지하고 막대한 사익을 취했다. 최순실 말 한마디로 장관이 결정되고 예산이 짜여지며 기업이 돈을 대고 대통령의 연설문도 고쳐졌고 외교정책도 바뀌었으며 개성공단으로 향하는 교류·협력의 길도 닫혔단다. 분노한 국민은 대통령이 집으로 물러나라고 촛불을 들고 길거리로 나섰다. 전국의 대학에서는 학생과 교수들이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성명을 연이어 발표하고 있다.

하지만 대통령은 시간을 끌고 정치권은 갈피를 못 잡고 있는 것 같다. 그 사이 대통령 하야니 탄핵이니 요구도 분출한다. 대통령 사과와 관련자 처벌 요구도 끊이지 않는다. 물론 대통령이 형식적인 국가의 수반으로 물러서고 거국중립내각이나 책임총리에게 남은 임기 동안 국정을 맡기자는 논의가 대세다. 어제는 야권이 별도의 특검과 국정조사를 추진하기로 했다. 그런데 싹수가 노랗다. 항상 그랬듯 검찰이 헤매고 있고 청와대는 출구전략만 짜고 있다. 여당은 친박이니 비박이니 주도권 싸움에, 야당은 선명성 다툼에 빠져 있다.

현재 가장 중요한 것은 대한민국의 헌법을 수호하고 법치주의를 제도화하는 것이다. 대통령마다 취임식에서 선서하지만 임기 동안에는 게을리했던 일이다. 박 대통령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헌법정신을 준수해야 한다. 국민 눈높이에서 검찰의 수사가 전면적이고 공정하게 진행되도록 보장해야 한다. 대통령이 적당히 눈물을 보이는 사과나 돌려막는 청와대·행정부 인적 교체를 시도한다면 일을 더욱 어렵게 할 것이다. 대통령은 이제라도 국정을 제도와 시스템에 기초해 운영하고 삼권분립의 헌법정신과 원칙을 지켜야 할 것이다.

검찰은 법에 규정된 권한을 갖고 성역 없이 수사해야 한다. 계속 눈치를 본다면 존립 근거마저 의심받을 것이다. 대한민국을 공황상태에 빠뜨리고 국민에게 죽을죄를 지었다는 최순실에게 증거인멸 가능성이 없다고 조사받기까지 하루 이상 말미를 주고, 바로 다음날에는 증거인멸 가능성을 이유로 긴급체포하는 무능을 보여서는 안 된다. 영상조사실에서 카메라를 끄고 설렁설렁 조사한 뒤 적당한 혐의로 재판받게 하고, 병 때문에 적당한 시점에 석방할 것을 도모한다면 검찰청사 현관에는 개의 오물세례가 이어질 것이고 분노한 포클레인의 질주도 끊이지 않을 것이다. 이제라도 검찰은 엄중한 존재이유를 과시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대한민국이 살아나는 길이다.

이준한 정치외교학 인천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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