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 뉴스] 스키어 떠난 새벽, 수은주 영하… 雪國작업 개시! 007작전 기사의 사진
2일 평창 휘닉스파크 슬로프가 하얀 눈으로 뒤덮여 있다. 이 스키장은 지난달 30일부터 제설작업을 시작하면서 시즌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알렸다. 보광휘닉스파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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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가을 옷깃에 스치는 쌀쌀한 바람은 온몸을 움츠러들게 합니다. 계절이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갈수록 따뜻한 아랫목이 더 그리워집니다. 그러나 날씨가 추워질수록 더 바빠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른 새벽 아찔한 산비탈을 오르내리며 인공눈을 뿌려 순백의 설원을 연출하는 ‘눈 만드는 사람들’입니다.

지난달 30일 강원도내 스키장에 비상이 걸렸습니다. 철원 김화 지역의 아침 최저기온이 영하 7.3도까지 떨어지는 등 강원도 대부분 지역의 수은주가 영하로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휘닉스파크와 용평리조트 등 평창지역 스키장은 약속이나 한 것처럼 이날 오전 일제히 인공 제설(製雪) 장비를 가동해 슬로프에 눈을 쏟아냈습니다. 스키장은 이번 제설작업을 통해 스키시즌 시작이 임박했음을 알렸습니다.

이들 스키장이 같은 날 제설을 한 것은 처음이 아닙니다. 지난해에도 제설 날짜가 같았고 재작년과 그 전해에도 같은 날 눈을 만드는 등 10여년째 끊임없이 제설경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눈을 만드는 사람들은 수시로 일기예보와 기온, 습도 등을 점검합니다. 기온이 영하권으로 떨어진다는 예보가 있으면 전날부터 제설장비와 인력을 비상대기시킨 뒤 수은주가 영하권으로 내려가고 적정 습도가 갖춰지면 ‘제설작전’을 펼치기 시작합니다.

스노보더 마니아들 사이에서 ‘막강제설팀’이라 불리는 휘닉스파크 제설팀도 예외는 아닙니다. 이 제설팀은 마니아들이 원하는 대로 눈을 뿌리고 정설작업을 펼쳐 ‘막강제설팀’이라는 애칭을 갖고 있습니다.

제설팀은 지난달 30일 기온이 영하로 떨어진다는 예보를 접한 전날부터 비상대기에 들어갔습니다. 밤새 온도계를 지켜보며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 20여명의 제설팀은 오전 5시30분 온·습도계가 영하 3도, 습도 70% 이하를 알리자 슬로프로 뛰쳐나갔습니다. 이날 제설팀은 오전 8시30분까지 약 3시간 동안 42대의 제설기를 동원해 ‘분노의 제설작업’을 펼쳤습니다. ‘분노의 제설’은 막강제설팀이 제설기를 이용해 폭풍처럼 눈을 쏟아내는 모습을 마니아들이 빗대어 표현한 말입니다.

제설 경력 21년차 베테랑인 휘닉스파크 레저지원팀 박영태(47) 과장은 “요즘엔 좋은 눈을 만들고 잘 유지해야 손님이 많이 찾아오기 때문에 최고의 설질(雪質)을 유지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눈을 좀처럼 구경하기 힘든 요즘 신문지면과 방송을 통해 눈을 만드는 장면이 소개되면 스키어와 스노보더들은 시즌이 시작된 것을 알고 열광합니다. 변덕스러운 날씨 때문에 반나절도 안 돼 눈이 모두 녹아버릴 수 있는 위험이 있지만 스키장들이 홍보 효과를 위해 과감히 1000만원 넘는 돈을 들여 제설작전을 펼치는 이유입니다.

그렇다면 눈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걸까요. 스키장의 눈은 자연설이 내리지 않는 이상 대부분 인공눈으로 채워집니다. 보통 스키장에는 10∼20명의 팀원이 제설을 담당합니다. 이들은 날씨가 추워지기 시작하는 10월 말부터 비상근무체제로 돌입합니다.

이들은 스키어와 스노보더들이 모두 철수한 새벽 시간부터 진가를 발휘합니다. 대당 5000만원을 호가하는 제설기를 이용해 눈을 뿌리고 4억5000만원의 몸값을 자랑하는 정설차량을 이용해 슬로프 위에 뿌려진 눈을 고르게 다집니다. 휘닉스파크의 경우 제설기 120대, 정설기 12대를 보유하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총 100억원 넘는 장비가 겨울시즌을 위해 가동되는 셈입니다.

제설기는 공기와 물을 일정 비율로 섞어 뿌리는 노즐과 물만 뿌리는 노즐로 구성돼 있습니다. 고압의 공기를 섞은 물방울이 노즐을 빠져나와 공기 중에 퍼지면 급격히 팽창하면서 온도가 뚝 떨어지게 됩니다. 이때 생긴 인공눈의 씨앗에 물이 달라붙어 얼면 순식간에 눈이 되는 것입니다.

눈을 만드는 비용도 만만치 않습니다. 일반적으로 슬로프에서 스키나 스노보드를 탈 수 있게 하려면 50∼60㎝ 두께로 눈을 덮어야 합니다. 일반 스키장 1000㎡에 50㎝ 두께로 눈을 뿌리려면 약 320t의 물이 필요합니다. 이 때문에 대부분 스키장은 눈을 만드는 비용을 줄이기 위해 시즌 시작 전 계곡물을 모아 두었다가 시즌이 시작되면 눈을 만드는 데 사용합니다. 휘닉스파크는 지난 시즌 눈을 만드는 비용만 7억원이 들었습니다.

자연설이 내려도 스키장은 인공눈을 만들어 자연설과 뒤섞는 작업을 매번 반복합니다. 자연설은 눈에 보이는 풍성한 모습과는 달리 인공눈과 비교해 스키를 타기에 적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인공눈은 육각모양의 결정을 가진 자연설과 달리 기계에 의해 순식간에 만들어져 알갱이 사이에 틈이 없습니다. 또 인공설은 푹 파이는 자연설에 비해 마찰력이 높아 속도와 방향조절이 쉽습니다. 스키선수와 마니아들이 인공설을 선호하는 이유입니다.

평창 알펜시아리조트 원용호(43) 주임은 “자연설은 입자가 크고 단단하지 않아 햇볕이나 온도가 올라가면 쉽게 녹아 입자가 단단한 인공설을 같이 녹이는 현상이 발생하게 된다”면서 “이러한 이유로 자연설이 내리면 인공설을 만들어 뒤섞는 작업을 벌여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제설 담당자들은 살을 에는 추위보다 최근 들쭉날쭉한 날씨를 최대의 적으로 꼽았습니다. 과거와 달리 해마다 오르는 평년기온과 엘니뇨 등의 이상기후로 제설작업과 설질 유지·관리가 예전처럼 쉽지 않다고 설명했습니다.

휘닉스파크와 용평리조트가 오늘부터 겨울 시즌을 시작합니다. 지난 시즌(11월 27일)보다 무려 23일이나 빠릅니다. 모두가 잠든 새벽 하얗게 밤을 지새우며 폭풍 제설작업을 펼쳐온 제설팀 덕분입니다. 지난봄부터 스키어와 스노보더들은 설원 위를 달리고 싶어 엉덩이가 들썩들썩거렸다지요. 지금이 바로 스키와 보드를 둘러메고 스키장으로 떠날 시간입니다. 평창=서승진 기자 sjse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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