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시사 > 전체기사

[데스크시각-한승주] 밤공기는 찼지만 광장은 뜨거웠다

더 큰 걱정은 은폐·축소 시도… 국민이 무섭게 지켜보고 있어

[데스크시각-한승주] 밤공기는 찼지만 광장은 뜨거웠다 기사의 사진
최순실씨 국정농단으로 나라가 어지럽다. 덩달아 우리 마음도 어지럽다.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말도 안 되는 얘기들이 줄줄이 나오고 있다. 말문이 막힐 정도의 황당함을 넘어 참담하다. 이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버젓이 국민투표로 뽑힌 대통령이, 엘리트 공무원들을 뒤로 하고, 전문가도 아닌 사적인 친분밖에 없는 최씨와 국정을 함께했다. 최씨는 대통령의 국정 연설문을 수정하고, 외교 안보 등 국가 기밀을 받아 봤다. 이 정부의 역점사업인 창조경제와 문화융성에도 깊숙이 개입했다. 재단을 만들어 수백억원대 기금을 대기업으로부터 모았다.

또 대통령과의 친분을 이용해 자신의 사익을 챙겼다. 특혜조항을 만들어 딸을 대학에 입학시키고 학칙을 개정해 학점까지 챙겼다. ‘비선실세’라는 말만 들었지 이렇게까지 노골적으로 국정에 개입하고 호가호위하며 자신의 이익을 챙겼을 줄이야. 이젠 박근혜정부의 모든 정책에 의심이 갈 정도다.

세계사에도 유례가 없을 정도의 국정농단 스캔들에 국민은 분노했다. 민주공화국의 성난 민심은 촛불을 들었다. 대통령의 하야와 탄핵을 요구하고 나섰다. 도심에서의 촛불시위는 8년 만이다. 어느 때보다 민심은 화가 많이 나 있다. 국민이 주인인 나라에서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되는,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이 시점에서 최씨의 국정농단보다 더 큰 걱정은 청와대와 검찰의 은폐·축소 시도다. 일련의 상황을 되짚어보면 이런 걱정이 기우가 아님을 알게 된다. 지난 일요일 오전 극비리에 입국한 최씨는 현장을 유유히 빠져나갔다. 건강을 추스르기 위해 하루만 달라는 변호사의 요구에 입이라도 맞춘 듯 검찰은 ‘오늘 최순실 소환 없다’고 발표했다. 검찰에 출석하기까지 31시간. 그동안 최씨는 변호인단과 검찰수사에 대비한 작전 회의를 가졌다. 증거를 은폐하고 말을 맞추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검찰에 소환되며 “죽을죄를 지었다”던 최씨는 다음 날 모든 혐의를 부인했다. 1박2일에 걸친 청와대 압수수색 결과는 또 어떤가. 청와대가 나서 증거를 인멸하고 검찰이 공조해 사건을 서둘러 작게 마무리한다는 의심을 지우기 어렵다.

이제 어떻게 될 것인가. 최씨에 대한 조사를 마친 검찰은 중간발표를 할 것이다. ‘조사해보니 지난 대선을 전후해 연설문을 보고 고쳐준 사실은 있다. 하지만 보좌진이 구성되고 나선 개입하지 않았다. 인사나 국정에 개입한 흔적은 찾지 못했다.’ 대통령의 1분40초짜리 녹화된 사과문과 같은 맥락일 가능성이 크다. 딸의 입시 의혹은 결정적인 증거를 찾지 못할 것이다. 대통령은 아마도 이제 흔들림 없이 국정을 이어가자고 회견을 할 것이다. 우병우 전 민정수석과 문고리 3인방을 잘랐고, 총리도 새로 임명했으니 이 정도에서 마무리하자고?

하지만 국민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이미 들불처럼 달아오른 민심은 그 정도로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대통령이 국민을 너무 얕잡아봤다. 이번 촛불시위는 특정 정당이나 노조의 주도를 넘어섰다. 부모 잘 만난 것도 실력이라는 말에 분노한 대학생, 이런 줄도 모르고 투표했던 자신을 자책하는 노부부, 아이들에게 부끄러운 나라를 물려줄 수 없다며 유모차를 끌고 나온 주부들. 이 나라의 주인들이 나선 것이다.

지난 주말 청계광장을 가득 메운 시위에선 이런 얘기가 나왔다. “국민은 그동안 대통령이 저질러온 온갖 부패와 무능과 타락을 인내해 왔다. 하지만 이번에도 과연 가만히 있을까?” 검찰과 청와대는 국민들이 수사결과를 무섭게 지켜보고 있음을 잊어선 안 된다. 11월 초겨울 밤공기는 차디차지만 광장은 어느 때보다 뜨겁게 달궈지고 있다.

한승주 문화부장 sjhan@kmib.co.kr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