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 토크] ‘어순실한’ 세상 기사의 사진
하인리히 법칙 1:29:300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까. 원인 없이 결과 없다는 과학적 사실을 은유적으로 빗댄 말이다. 모든 일에는 이에 상응하는 앞선 많은 일이 연계돼 있고, 이로부터 표출되는 현상은 선행된 일들에 의한 영향 또는 결과이다.

따라서 어떤 선행지표나 현상은 다가올 결과를 유추할 수 있는 근거나 징조로서 의미를 지니기도 한다. 이렇듯 어떤 일의 발생 가능성이나 기미를 암시하는 전조현상을 자연과학이나 사회과학에서 찾아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1920년대 미국의 한 보험회사에서 일하던 ‘허버트 하인리히’는 수많은 산업재해 관련 사고를 처리하면서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일관된 양상을 발견했다. 이는 산업재해로 인해 심각한 중상자 1명이 생겨나면 동일한 재해로 경미한 부상자는 29명이 발생했고 부상을 당할 뻔했던 사람이 300명에 이른다는 것이었다. 이를 ‘하인리히 법칙’ 또는 ‘1:29:300 법칙’이라 부르는데, 이는 1회의 심각한 사건 사고에는 중대한 전조가 29번, 경미한 징후가 300번 나타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암사자 무리가 한 마리의 물소를 잡기 위해 공격할 때에도 위험한 상황을 직면하고 살아남은 물소의 숫자는 이와 유사하지 않을까. 보다 명확한 전조현상은 자연계의 날씨에서 잘 나타난다. 달무리는 비가 내릴 것을 암시하고, 서리가 많이 내리거나 안개가 짙은 날은 화창함을 예견할 수 있는 전조현상이 그 예이다. 하수구 냄새가 유난히 진동함은 흐리거나 비가 올 징조인 것은 저기압이 형성되어 이럴 확률이 높고 이런 날은 악취가 지표면으로 낮고 빠르게 퍼지기 때문이다.

얼마 전 한 여배우가 빗댄 것처럼 작금의 현실이 ‘어순실한 세상’으로 변한 탓에 우리사회의 모습이 참담하다. 300개에 이르는 경미한 징후를 무시하고 29번에 이르는 중대한 전조를 무시한 대가가 너무도 크고 고통스럽다.

민주주의의 참된 가치가 늘 비싼 수업료를 치러야 체득된다는 자조적 사고를 떨쳐버릴 때이다. 거친 바다만이 유능한 뱃사람을 만든다고 스스로를 위로하기엔 이 가을이 너무 서글프지 않은가. ‘서쪽에 무지개 뜨면 강가에 소 매지 말라’던 선조들의 지혜가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노태호(KEI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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