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태원준] 촛불집회 기사의 사진
1988년 3월 25일 슬로바키아 수도 브라티슬라바에는 추적추적 비가 내렸다. 해 질 무렵 시내 광장에 시민 5000여명이 모여들었다. 한 손에 우산을, 다른 손에는 초를 들고 있었다. 당시 이 나라는 공산정권의 체코슬로바키아였고, 광장의 시민은 지하교회 가톨릭 신도들이었다. 찬송가를 부르며 신앙의 자유를 요구하는 평화적 촛불을 향해 정권은 즉각 물대포를 쐈다. 저항의 싹을 자르려 했는데 오히려 불을 붙였다. 이듬해 벨벳혁명으로 이어져 공산정권 붕괴의 기폭제가 됐다. 유럽 현대사에서 가장 유명한 ‘촛불집회’는 이렇게 정권을 무너뜨렸고, 슬로바키아는 3월 25일을 인권의 날로 기념한다.

브라티슬라바보다 앞선 1987년 6월 10일 서울에서도 촛불시위가 벌어졌다. ‘박종철 고문살인 규탄 및 호헌철폐 국민대회’가 열린 이날 밤 명동성당에 몰려간 시위대는 촛불을 들고 개헌과 민주화를 요구했다. 민주화 전과 후의 우리나라 시위문화는 각각 화염병과 촛불이 대표한다. 6월 항쟁은 과도기답게 낮에는 화염병, 밤에는 촛불이 시위 수단으로 공존했다.

1992년에는 최초의 ‘네티즌 주도 촛불집회’가 열렸다. 하이텔이 출범하며 그때까지 무료였던 PC통신을 월 9900원 유료로 전환하자 사용자들이 들고 있어났다. 기존 사업자인 케텔 본사 앞에서 촛불시위를 벌였다.

2002년 미군 장갑차에 숨진 미선·효순 사건이 본격적인 촛불 시대를 연 뒤 정권마다 대규모 촛불집회가 벌어졌다. 노무현정부에선 탄핵 반대 집회, 이명박정부에선 광우병 집회가 대표적이었다. 박근혜정부 들어서도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 세월호 사태 등과 관련한 촛불집회가 여러 차례 있었다. 타올랐다 사그라지기를 반복하던 차에 이번엔 제대로 불이 붙은 듯하다. 그 화력은 집회의 질서를 보면 알 수 있다.

지난 주말 ‘박근혜 퇴진’을 외친 광화문 촛불집회는 무려 20만명이 모였지만 충돌은 찾아볼 수 없었다. 조짐이 보이면 “경찰과 싸우지 맙시다”란 누군가의 함성이 들리곤 했다.

굳이 물리력을 동원해 청와대로 행진하지 않아도 시위의 대상을 압도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보였다. 경찰도 관행적으로 집회인원을 축소하는 것 이상의 대응은 엄두를 내지 못한다. “이것이 정의(正義)”라는 믿음이 확고할 때 나타나는 군중의 모습이 이런 것이다. 정의가 회복되기 전에는 쉽게 꺼질 것 같지 않다.

글=태원준 논설위원, 삽화=이영은 기자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