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조영태] 사라져버린 저출산 대응 골든타임 기사의 사진
이미 1년 반 전의 일이다. 2015년 2월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후 처음으로 직접 주관한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회의에서 2016년부터 5년간이 저출산 인구위기 대응을 위한 ‘골든타임’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관련 정책을 힘 있게 추진하겠다고 선언했다. 인구학자로서 당시 이 선언을 환영했고 정부의 추진력을 기대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기대는 의구심으로 변해갔다. 대통령이 국민들에게 골든타임이라고 선언할 정도라면 청와대와 정부는 완벽한 수준은 아니어도 저출산 극복을 위한 최소한의 비전을 제시할 테고 정책도 마련해놨을 거라고 생각했다. 너무나 놀랍게도 대통령의 골든타임 선언과 관련한 어떤 비전도 제시된 것이 없었다. 참 궁금했다. 당시 박 대통령은 왜 저출산 문제를 국정 전면에 꺼내 강력한 극복 의지를 표명했는지, 그러면서 왜 실제로는 사전 준비를 해놓은 게 없었는지 말이다.

그래서 다시 생각했다. 아마도 지금 준비한 것은 없어도 이 선언을 계기로 청와대와 정부가 저출산 극복을 위해 국민에게 비전을 제시하고 관련된 정책을 개발해 나갈 것이라고. 안타깝게도 기대 섞인 이 생각은 또 틀렸다. 이전에 비해 정부의 저출산 정책은 변한 것이 거의 없었다. 그나마 2015년 말에 발표돼 2020년까지 지속될 제3차 저출산고령사회기본계획도 정책의 내용과 알맹이가 부실해 국민의 냉소와 반감만 불러일으켰다. 예컨대 저출산 대응 기조를 보육과 양육 중심에서 젊은이들의 혼인을 지원하는 것으로 바꾸고 이를 위해 청년들의 주거와 고용 문제를 해결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겠다고 발표하고는, 어떻게 이를 달성하겠다는 세부정책은 제시되지 않았다. 지난 7월 보완책이 발표됐는데, 청년들의 주거와 고용 문제는 쏙 빠진 채 엉뚱하게도 불임부부의 난임시술 지원을 확대하겠다는 것이었다. 대통령이 직접 언급한 인구위기 대응 골든타임이 시작됐으니 저출산의 근본원인에 대한 처방이 나올 것을 기대했던 입장에서 정말로 맥이 빠질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왜?’라는 의구심을 떨쳐낼 수가 없었다.

박 대통령이 저출산 문제에 관심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청와대에서 저출산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비서관에게 물어봐도, 저출산 정책의 간사 역할을 수행하는 보건복지부 차관에게 물어봐도 돌아오는 답은 대통령이 이 문제에 매우 큰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럼 대통령 관심이 많다는데 왜 정부 정책은 국민의 냉소를 자아내는 수준에 그치고 있는지 궁금증은 점점 더 커져만 갔다.

감사하게도(?) 최근 드러난 국정농단 ‘주역’들의 행태와 박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는 이런 궁금증을 해소해줬다. 바로 저출산을 비롯한 인구문제는 이들의 관심사에 근접조차 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동안 저출산 대응은 복지 혜택 위주로 만들어져 있었기 때문에 농단을 통한 돈벌이 대상이 되기 매우 어려웠다. 게다가 청년들의 혼인을 지원하기 위한 부동산 정책은 궁극적으로 부동산 매매와 전세 가격의 하락 없이는 불가능한데, 이는 그들의 이해관계에 반하는 일이다. 대통령의 골든타임 선언이 나온 시점에 당시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부동산 가격을 올리기 위한 경기부양책에 열중했다. 실제로 부동산 가격은 올라갔고, 동시에 출산율과 혼인 건수는 크게 감소했다.

국정농단 주역들의 인구문제에 대한 무관심과 박 대통령의 무지몽매(無知蒙昧)가 대통령 스스로 이야기한 저출산 위기극복을 위한 5년의 시간 중 2년을 그냥 허비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혹자는 이런 논리를 억측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청와대와 정부가 스스로 인구문제 대응을 위한 골든타임이라고 규정해놓고도 왜 지난 2년간 그 소중한 시간을 허비했는지, 누군가 더 명확하면서도 합리적인 설명을 해줬으면 좋겠다. 그런데 그게 과연 가능할까?

작금의 사태를 보면서 가장 걱정스러운 것은 인구문제 대응을 위한 골든타임이 2년의 허비로 끝나는 게 아니라 아예 모두 사라져버릴 가능성이 커졌다는 점이다. 코스피 지수에 나타났듯 경제 상황이 악화되고 있다. 강요 때문이었겠지만 대기업들이 연루된 게 확실한 상황에서 경제 전망은 암울하다. 정치 상황도 마찬가지여서 갈등은 더욱 커져만 가고, 국정농단 주역들의 오리발은 국민적인 스트레스를 키우고 있다. 미래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혼인과 출산에 대한 청년들의 관심과 의지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골든타임이 지나가면 우리나라의 저출산 문제는 돌이킬 수 없게 된다. 약 10년 후부터 희망은 사라지고 말 것이다. 국가를 위하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다면 박 대통령부터 책임 있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조영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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