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수호 칼럼] 경의선 책거리를 거닐며 기사의 사진
홍대 앞은 늘 뜨겁다. 골목골목 젊은 웃음소리가 넘쳐난다. 그 분방함 속에 외국인 관광객들이 섞이니 혼융의 땅이 된다. 물은 차고 넘쳐 주변으로 스며든다. 연남동 숲길은 나무보다 사람이 많다. 벤치가 꽉 차니 사람들은 텐트를 치거나 돗자리를 깐다. 그러고는 먹고, 떠들고, 논다. 홍대보다 더 유명한 홍대 앞 풍경이다.

이런 소비와 욕망이 흥건한 동네에 새로운 문화지대가 생겼다. 이름하여 ‘경의선 책거리’. 4000여 출판사와 디자인회사를 품고 있는 마포구가 경의선 폐선 부지 250m에 책의 길을 소담스럽게 꾸몄다. 시민들에게 독서문화의 중요성을 일깨우려는 취지다. 모토가 재미있다. ‘책 있는 거리, 책 읽는 마을, 책 익는 도시’.

지난 주말 지하철 홍대입구역 6번 출구를 나서니 인근의 번잡함과 달리 호젓한 책거리가 나타났다. 그 사이사이에 올망졸망 객차 모양의 책 부스가 이어졌다. 여행, 예술, 아동, 인문, 문학 등 테마별로 나눠 ‘산책’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여기서 책을 읽을 수도, 살 수도 있다. 집필을 할 수 있는 창작공간과 세미나실도 있다. 와우교 밑에 들어선 ‘책거리역’은 간이역의 옛 추억을 떠올리게 했다.

이런 공간이 새삼스레 중요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책과 지성에서 멀어진 대통령의 언어 때문이다. 집의 책꽂이를 보면 주인의 수준을 알 수 있는데, 대통령의 서재가 한없이 빈약하더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어려울 때 펑유란의 ‘중국철학사’를 읽었다고 했는데, 권력을 얻은 후에는 책을 내팽개친 듯하다. 그래서인지 대통령의 말은 격조가 낮고 울림이 없어 설득의 힘을 갖지 못한다.

특히 두 번의 사과문에서 크게 실망했다. 국민들의 마음을 얻을 천금같은 시간을 허공에 날리고 말았다. 90초짜리 1차 사과문에서는 ‘순수’라는 단어의 순수성을 오염시켰다. 최순실에게 연설문을 넘긴 것이 “순수한 마음에서 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범법과 순수를 구분하지 못하는 상황은 위중하다. 두 번째 사과에서 “내가 이러려고 대통령을 했나” 부분은 분별력을 잃은 경우다.

대통령의 ‘순수’는 최순실의 ‘의리’와 상통한다. “언니 옆에서 의리 지키니까 이만큼 받잖아”라는 말은 조폭에 어울리는 말이다. 이런 사람의 손에서 ‘배신의 정치’ ‘진실한 사람’과 같은 말이 만들어진 모양이다. ‘간절히 원하면 온 우주가 도와준다’ 역시 파울로 코엘료의 소설이나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놓친 김연아는 쓸 수는 있어도 대통령의 공식 언어로는 적절치 못하다.

내가 그동안 들은 대통령의 발언 가운데 가장 난감했던 것이 ‘통일대박’이었다. 남북한 통일이 한반도를 넘어 세계만방에 두루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는 설명이 뒤따랐지만 경박하기 이를 데 없다. 외국 언론이 적절한 번역어를 찾지 못해 애를 먹을 정도였다면 실패한 수사다. 물론 현실에서는 대박이 아니라 쪽박이었지만.

지성의 기둥이 건실하지 못하면 판단력이 흐려지고 언어가 타락한다. 그 부실한 자리에 오만과 편견, 독선이 들어선다. 개인의 인텔리전스는 아버지로부터 받는 것이 아니라 독서와 대화, 토론을 통해 익는다. 그리고 문학과 음악, 연극과 미술 같은 문화체험으로 삶을 확장시키고 타인과 공감하는 능력을 키운다. 정치인에게 필요한 이성과 판단력, 합리적 사고 역시 끊임없는 지적 연마를 통해 이뤄진다.

경의선 책거리의 바닥에는 철학자 키케로의 금언이 새겨져 있다. “책이 없는 집은 문이 없는 집과 같고, 책이 없는 방은 영혼이 없는 육체와 같다.” 책 읽기 좋은 계절이다. ‘아동산책’에서 아이와 함께 그림책을 고르는 엄마의 표정이 얇은 햇살에 빛난다. 멀리 세교리역에서 기적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가을은 아직 아름답다.

손수호 (객원논설위원·인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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