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와의 만남-‘해방신학 이야기’ 홍인식 목사] “하나님은 높아지는 것보다 낮아짐을 기뻐하셔”

[저자와의 만남-‘해방신학 이야기’ 홍인식 목사] “하나님은 높아지는 것보다 낮아짐을 기뻐하셔” 기사의 사진
해방신학은 낮은 이들과 함께 한다. 해방신학을 전공한 홍인식 목사가 지난 5월 교회학교 성경암송대회 시상식에서 어린이와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무릎을 꿇은 뒤 밝은 얼굴로 상장을 내밀고 있다. 순천중앙교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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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마침 주일이었다. 예배당 앞에서 만난 머리 희끗한 한 여성이 홍인식(59) 전남 순천중앙교회 목사를 향해 다짜고짜 “목사님이 보고 잡았당께(보고싶었다)”라고 했다. 지난 4월 부임한 홍 목사가 교인들로부터 받고 있는 환대를 단박에 느낄 수 있었다.

진보적 신학을 공부하고 ‘해방신학 이야기’(신앙과지성사)를 지은 홍 목사는 100여년 전통의 장로교회에서 어떻게 목회를 하고 있을까.


“다들 제가 어떻게 목회를 하는지 궁금해 하는 눈치더군요. 허허. 우리가 속한 기독교도, 제가 공부한 신학도 기본정신은 인간에 대한 사랑입니다. 이 사랑의 실천이 목회 아니겠습니까. 사랑은 부드러움입니다. 부족하지만 교인 한 사람 한 사람을 존중하고, 어려운 처지의 사람들을 안아주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해방신학은 억눌린 이들에 대한 사랑에서 태동했다고 홍 목사는 썼다. 책의 한 대목. “중남미 대륙에서 약 150년간 정복전쟁 이후 생존한 토착민 수는 얼마일까. 500만명이다. 약 6000만명이 죽임을 당했다는 말이다.…올란도 코스타는 이 땅을 ‘죄악으로 잉태된 대륙’이라고 불렀고…해방신학은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의 삶의 현장에서 나온 신학적 성찰이라고 볼 수 있다(28∼31쪽).”

해방신학자들은 예수의 삶을 본받으려 애썼다. “엘살바도르의 오스카 로메로 주교는 누군가 자신을 미친 사람이라거나 공산주의자라고 부른다 할지라도 자신은 단지 ‘가난한 사람들, 의에 목마른 사람에게 복이 있다’고 한 주님의 말씀을 설교할 뿐이라고 했어요.” 로메로 주교는 1980년 불의한 사회에 대항하는 이들을 주님이 축복한다는 설교를 하던 중에 암살당했다.

사회참여를 강조한 해방신학은 국내 사회운동의 주요한 이론적 토대가 된 민중신학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해방신학이 예수 대신 사회주의 혁명을 주장한 칼 마르크스를 신봉한다는 것은 오해라고 홍 목사는 설명했다.

“대표적인 해방신학자 구스타보 구티에레스가 쓴 ‘해방신학’의 이론적 기초는 성경입니다. 이 책에는 마르크스가 언급되지 않습니다. 사실 주요 해방신학자들의 저서는 마르크스주의를 거의 언급하지 않습니다. 오래 시간 제국주의나 독재와 투쟁했던 남아메리카인들이 마르크스주의를 중요시하다보니 이곳에서 태어난 해방신학이 마르크시즘에 접목돼 있는 것처럼 보일 뿐입니다.”

장로회신학대 신대원을 졸업하고 25년 동안 중남미 선교사로 사역한 그는 1997년 아르헨티나 연합신학대학원에서 해방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쿠바와 멕시코 등에서 교수로 지내다 청빙 절차를 거쳐 올해 이 교회로 오게 됐다. “청빙 절차 중에 해방신학이 무엇인지 질문을 받았어요. 전 해방신학이 가난한 이들과 함께하고, 교회가 낮아지는 신학이라고만 했어요. 그때 박수를 받았어요.” 홍 목사는 빙그레 웃었다.

그는 해방신학을 통해 스스로 변화됐다고 한다. “해방신학을 공부하면서 높아지는 것보다 낮아지는 것을 하나님이 더 기뻐하신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해방신학은 빈자(貧者)의 눈으로 성경을 해석하고, 자기 모습을 성찰하고 실천을 고민합니다.”

해방신학의 실천은 ‘가난한 이들의 의자에 앉기’(255쪽)이다. 그는 그가 공부한 해방신학대로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과 함께 하는 마을 교회를 그리고 있었다.

“교회 부임 후 인근 주민센터를 찾아가 저희 교회가 할 일이 없는지 물어봤어요. 담당자가 처음엔 매우 당황하더군요. 독거노인 반찬 나눔을 도와달라고 해서 매주 교인들과 반찬을 나눠드리고 있어요.” 대화를 마칠 무렵 이날 새로 등록한 교인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그분이 올해 여름 성경학교에 딸들을 보냈다고 해요. 교회에 아이들을 데리러 왔을 때, 제가 네 살 막내 아이를 안아서 재우고 있더랍니다. 그 모습을 보고 저희 교회에 나올 결심을 했답니다. 저는 기억도 안 나는데….”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지극히 작은이와 함께 하는 ‘낮은 자들의 신학’, 해방신학의 다른 이름일지도 모른다. 순천=강주화 기자 rul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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