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동 칼럼] 경제부총리 인사청문회 먼저 열자 기사의 사진
‘충격과 공포’ ‘세계 강타하다’ ‘뒤엎다’ ‘각자도생의 시대’ ‘패닉’.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의 차기 대통령으로 당선된 소식을 전하는 신문 1면 톱기사 제목이다. 살벌하다. 경제면을 펼치면 더 섬뜩하다. 세상이 곧 망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한데 같은 날 아침 글로벌 주식시장은 상승일색이다. 우리 증시도 올랐다. 머쓱하지만 세상이 그만큼 불확실하다는 방증 아닐까.

호들갑을 떨 필요는 없다. 하지만 전제가 있다. 준비가 돼 있을 때다. 그렇지 않으면 눈뜨고 당한다. 시장은 결코 선하지 않다. 돈은 눈도 없고, 날개도 없지만 빛의 속도로 움직인다. 돈 되는 곳이라면 한순간에 몰려가고, 그렇지 않다면 한순간에 빠져나간다. 무서우리만큼 인정사정없다. 이미 경험한 바다. 지금 막 성인이 된 청년들이 태어났을 즈음이니 그리 오래된 일도 아니다.

며칠 전 지인들과 저녁자리에서 나온 말이다. “이러다가 진짜 나라 거덜나는 것 아니야? 배는 난파 직전인데 선장이 없으니. 다른 건 제쳐두고라도 경제부총리 인사청문회를 조속히 열어야 하는데….” 정치권은 좀 느긋하다. 여야 3당 정책위의장에게 ‘경제사령탑 우선 청문회’를 물었는데 입장이 달랐다. 짐작한 대로다. 경제 상황이 매우 어렵다는 점에는 인식을 같이했다. 그러나 행동이 없는 말은 위선일 뿐이다.

혹자는 경제위기론을 두고 최순실 사태를 물타기 하기 위한 꼼수라고 불편한 시선을 보낼지 모르겠다. 현실은 현실이다. 경제란 평상시엔 서로 이익을 다투는 세력 간 힘의 균형이 일정 부분 이뤄지기 때문에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그러나 한 번 무너지면 걷잡을 수 없다. 마치 팽팽한 균형을 유지하다 맥없이 무너지는 줄다리기처럼.

외환위기를 앞두고도 그랬다. 우리는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르고 칵테일 잔을 치켜 올렸다. 눈치 빠른 글로벌머니가 이를 놓칠 리 없다. 외자는 밀물처럼 빠져나갔고, 주변국들은 돈을 빌려주지 않았다. 정치 상황도 그때를 닮았다. 차남 현철씨가 국정농단으로 구속되면서 김영삼 대통령은 식물대통령이 됐다. 대선을 앞둔 국회는 유불리를 따지다 구조개혁 입법을 주저했다. 지금 그 데자뷔가 어른거린다.

트럼프의 공약 중 우리와 직결된 것은 보호무역 강화, 한·미 FTA 재협상,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 문제 등이다. 공약일 뿐이라고? 그건 순진한 소리다. 기조 자체는 변하지 않을 것이고, 지금까지의 통상 환경과는 사뭇 다를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더욱이 트럼프 경제 참모들은 헤지펀드 출신이 많다. 달리 말하면 돈장사꾼이다. 그들은 속성상 교묘하고 때론 비정하다. 외환위기 당시 재무장관 로버트 루빈도 골드만삭스 회장 출신이다. 싫든 좋든 우리는 이들을 피해갈 수 없다.

외환위기 당시로 돌아가 보자. ‘경제대권’을 손에 쥔 미셸 캉드쉬 IMF 총재는 점령군처럼 행동했다. 문을 닫는 기업이 속출했고,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은 노숙자가 됐다. 목숨을 끊는 사람도 급증했다. 이혼과 범죄도 크게 늘었다. 가족은 해체되고 사회 시스템도 붕괴됐다. 이뿐 아니다. 원화 값은 곤두박질쳤고, 금리는 폭등했다. 돈을 가진 사람은 돈 장사로 돈을 벌었다. 돈 없는 사람은 더 곤핍해졌다는 의미다. ‘경제식민시대’를 뼈저리게 경험했다. 외신은 “외국인들이 한국의 바겐세일을 즐기기 위해 서울로 몰려가고 있다”고 전했다. 국제 투기꾼 조지 소로스는 청와대에서 대통령과 독대했고, 투자를 빌미로 한몫 챙겼다. 현재와 같은 상황이 지속된다면 제2의 IMF가 오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아무도 ‘아니다’라고 단언할 수 없다. 몇 차례 경고 사인을 보냈는데도 정신 차리지 않으면 위기는 새벽녘 도둑처럼 든다. 그런 다음엔?

박현동 논설위원 hdpar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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