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유성열] 갤럭시 노트7과 대통령의 차이 기사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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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중순 한 이동통신사 홈페이지에서 갤럭시 노트7 사전예약 주문 버튼을 눌렀다. ‘얼리어답터’라서 그런 건 아니었다. 이전에 쓰던 휴대폰이 땅에 부딪히면서 박살났고 새 폰이 필요했다. 어차피 2년4개월간 사용하며 할부금까지 다 갚아 크게 아쉽지는 않았다.

마침 노트7이 출시를 앞두고 있던 시점이기도 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삼성전자를 향한 큰 신뢰가 새 휴대폰 선택에 대한 고민의 여지를 없앴다. 특히 노트1, 노트3를 잇따라 쓰면서 노트 시리즈에 만족도가 높았다. 생애 첫 휴대폰은 애니콜이었고, ‘먹튀폰’ 논란이 일었던 옴니아까지 사용해봤다. 흔히 말하는 삼성전자, 그중에서도 노트 충성고객이었다. 사전예약 이후 노트7이 택배로 도착하기까지 수일간 설레는 마음을 억누르기 힘들었다. 어차피 받아볼 노트7이었지만 ‘스펙’과 외관을 인터넷에서 수시로 검색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는 고대하던 바로 그 휴대폰이 드디어 내 손에 쥐어졌다. 블루코랄 색상은 사진으로 볼 때보다 아름다웠다. 횡단보도 신호를 기다리는 동안 처음 보는 사람이 “그게 노트7인가. 써보니 어떤가”라고 물어볼 때면 내심 어깨에 힘이 들어가기까지 했다.

며칠 뒤 노트7이 발화했다는 사진이 온라인상에 등장했다. 당연히 믿지 않았다. 자작극이 아닐까 의심도 들었다. 이후 발화 사례 보고가 이어졌지만 믿을 수 없었다. 단순 해프닝으로 마무리되기를 온 우주에 간절히 바랄 만큼 도저히 믿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삼성전자가 어떤 기업인가. 국내에서는 명실상부한 재계 서열 1위 그룹의 주력사이고, 전 세계적으로는 휴대폰 시장 점유율 1위에 빛나는 거대 기업이다. 그런 회사가 만든 최신 휴대폰이 터진다는 사실을 상식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러나 상황은 기대와 다르게 돌아갔다. 삼성전자는 배터리 결함을 인정하고 전량 회수 방침을 밝혔다. 결국 석 달도 안 되는 사이에 휴대폰을 세 번 교환하는 번거로움을 겪어야 했다. 점검을 받기 위해 서비스센터를 방문하고, 새 휴대폰을 받기 위해 대리점을 찾아야 했다. 특히 매번 공인인증서를 설치하고, 웹사이트마다 서로 다른 비밀번호를 찾아 입력하는 등 휴대폰을 세팅하는 과정이 너무나 성가셨다. 휴가 기간 탑승했던 비행기에서 노트7 사용 및 충전을 자제해 달라는 기내방송을 듣고는 마치 죄를 지은 것 같은 기분까지 느꼈다. 안전상 휴대폰 배터리가 60%만 충전되도록 강제적으로 조치돼 불편했는가 하면 노트7 전용 액세서리는 아직도 구입사를 통해 반품 절차를 밟고 있다.

철썩같이 믿었던 기업에 배신당하자 허탈함과 분노가 동시에 격렬하게 밀려왔다. 내가 이러려고 삼성 휴대폰을 써 왔나 자괴감이 들었고, 성공신화를 달려온 삼성의 혼이 비정상적으로 변질되어버렸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지난달 말 다른 휴대폰으로 교체하자 이번엔 전혀 다른 분야에서 폭발과 배신의 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른바 ‘최순실 게이트’가 터진 것이다.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번졌고 박근혜 대통령으로부터 느낀 배신감에 대다수 국민들은 분을 삭이기 힘들어하고 있다.

우선 전 대통령의 딸이라는 점에 후광효과를 입은 박 대통령은 원칙과 신뢰 두 단어로 표현이 가능한 드문 정치인이기까지 했고, 이에 대중적인 인기를 얻을 수 있었다. 부모를 총탄에 여의었다는 배경은 고령 유권자들의 심금을 울렸다. 하지만 현재 박 대통령의 원칙을 여전히 믿는 국민은 거의 없다. 원칙을 스스로 무너뜨린 대통령에 대한 신뢰도는 땅에 떨어졌다.

대통령 개인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사법부·행정부·여당을 포함해 사회 시스템 전반에 불신이 만연하게 됐고, 지도층을 겨냥한 혐오는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깊어지고 있다. 나아가 국가와 국민의 관계에도 금이 가면서 대한민국을 ‘헬조선’으로 묘사하는 세태가 오히려 시국을 정확하게 꿰뚫어본 셈이 되어 버렸다.

삼성전자는 이미지에 타격을 입었지만 다시 훌륭한 제품을 만들어 소비자들의 마음을 돌릴 수 있다. 삼성이 고의로 불량 휴대폰을 공급한 정황은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에 만회의 여지가 충분하다. 하지만 국가 지도자의 작위적 개연성이 충분해 보이는 사건으로 상처 입은 국민 마음은 어찌해야 하나. 향후 어떤 정권이 들어서더라도 우리는 대통령과 정부를 믿지 못하면서 이 나라에 몸담고 살아갈 터이다. 이 뿌리 깊은 불신이 치유되려면 얼마나 시일이 걸릴지 짐작조차 되지 않는다.

글=유성열 경제부 기자 nukuva@kmib.co.kr, 삽화=공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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