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정진영] 광장 기사의 사진
광장의 첫 모습이라고 하는 그리스시대 ‘아고라(agora)’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란 뜻이다. 일상의 주요 사안이 이곳에 온 다수 사람에 의해 결정되면서 사실상 공화제의 시원(始原)으로 여겨진다. 중세시대 광장은 ‘신성의 공간’이었다. 대성당과 교회 부속물로서의 기능이 많았다. 르네상스를 맞아 광장은 이성과 합리가 본격적으로 논의되는 ‘공공재로서의 공간’이었다. 그때 발화된 비판적 관점이 민주적 양식의 토양이 됐고 이후 시민혁명의 원천이 됐다고 판단하는 시각이 적지 않다.

프랑스 대혁명을 달궜던 파리 바스티유광장 등 유럽은 물론 재스민혁명의 중동, 스페인의 압제에 대항한 중남미 여러 나라들의 궐기가 구체화된 현장은 주로 광장이었다.

세계 주요 도시에는 그 지역을 상징하는 광장이 있다. 베이징의 천안문 광장, 모스크바 붉은 광장, 뉴욕 타임스스퀘어, 런던 트라팔가 광장, 파리 콩코드 광장, 로마 나보나 광장, 베를린 브란덴부르크 광장, 멕시코시티 소칼로 광장 등이 사례다. 평양에도 1954년 만들어진 김일성 광장이 있다.

‘최순실 게이트’가 확산되면서 대한민국의 광장이 주목받고 있다. 민심이 대거 쏠린 광화문 광장, 서울 광장, 청계 광장은 정국의 핵이 됐다. 지난달부터 주말에 진행된 집회에는 수만명에서 최대 20만∼30만명이 동참했다. 참가자들의 촛불은 대통령의 퇴진을 점점 현실화시키고 있다. 광장의 목소리는 제도권 정치를 견인해 정략의 프레임마저 바꿨다. ‘광장의 방식’과 ‘국회의 방식’이 다르다며 고민하던 제1야당을 비롯해 야 3당 모두 광장으로 나오게 만들었다. 광장의 문화는 과거와 달라졌다. 분노의 표출이라는 목적은 마찬가지였지만 저항의 방식은 변했다. 조직적·위력적 시위에서 자발적·평화적 행사로 진화했다.

오늘 서울 광장은 예사롭지 않다. 주최측은 지방에서 단체버스로 오겠다는 사람이 점점 느는 등 촛불집회에 50만∼100만명이 운집할 것으로 예상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집회가 최순실 정국의 최대 분수령이라고도 한다. 정작 ‘지지율 5%’의 대통령은 광장의 함성을 못 듣는 것 같다. 본인을 위해서라도 귀 기울였으면 좋겠다.

정진영 논설위원, 삽화=이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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