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공방] <79> 블랙리스트 기사의 사진
국민배우 송강호
나이가 들면서 바뀐 게 있다면 상대를 대하는 태도다. 상대의 말을 들어주는 자세를 견지한다. 젊었을 때는 상대의 생각이 나와 확연히 다르면 욱하고 얼굴 표정부터 달라지곤 했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외면하기도 했다. 성숙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도 마찬가지다. 상대의 의견을 존중하는 일은 배려의 첫걸음이다. 다양한 사람이 같은 공간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매듭을 푸는 일과 같다. 그래서 상대를 배려하지 않으면 도저히 간극을 줄일 수가 없다. 인정하는 순간 결속이고 인정하지 않으면 결손이 된다.

최근 문화계 블랙리스트 문서가 유출돼 파문이 일었다. 문화예술계에서 검열해야 할 9473명의 명단이 공개됐다. 지난 2014년 여름 청와대 정무수석이던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작성해 문화체육관광부로 배포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정부 정책 혹은 노선을 달리하는 예술인을 예술가로 인정하지 않음과 같다. 매우 불온하다. 정부가 우위에 서서 예술인들을 관리하려는 발상은 어디에서 출발한 것인가. 블랙리스트 문제의 본질은 지원금을 받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창작활동에 국가가 개입하는 것이다. 자유로운 발상이 담보되지 않는 억압의 예술이 존재할 수 있겠는가. 필자의 스승과 동료, 후배들도 블랙리스트에 올랐다. 국민들이 흠모하는 우리 시대의 배우까지 총망라되었다. 정치, 사회적 이슈에 소신을 밝힌 연예인들도 리스트에 올려놓았다. 연극평론가 김미도는 “연극계는 이미 검열 사태로 힘든 시간을 오래 보내오고 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심의위원회에서 심의에 참여할 당시 검열의 만행을 직접 봤다”고 토로했다. 심각한 예술 탄압의 현실이 우리 눈앞에 버젓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정부가 앞장서서 예술인들의 분열과 창작의 의지를 꺾고 있다. 우리 문화 토양이 얼마나 척박하고 뒷걸음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문화 예술 관료들의 천박한 잣대를 보면서 일그러진 우리 문화 예술의 현주소를 읽어 내린다.

강태규(대중문화평론가·강동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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