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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홍 칼럼] 民이 대한민국 최고 권력자다

“100만 촛불 만든 대통령… 불법 사실 드러나는 대로 사임 표명하는 게 옳을 듯”

[김진홍 칼럼] 民이 대한민국 최고 권력자다 기사의 사진
서울광장으로 가는 길은 매우 분잡했다. 오후 4시 즈음에 도착할 요량으로 대방역에서 전철을 기다렸다. 토요일이라 여유로울 것이라는 예상은 빗나갔다. 칸마다 거의 만원이었다. 간신히 비집고 몸을 실었다. 노량진역과 용산역, 남영역을 거치면서 승객이 더 늘어나자 여기저기서 “에휴, 못살아” “죽겠다”라는 신음이 흘러나왔다. 그러나 표정은 반대였다. 인상을 찌푸리기는커녕 웃음꽃이 피었다. 기쁜 비명이 이런 걸까. “시청역까지만 참읍시다”라는 이도 있었다. 서울역에서 전철을 타지 못한 시민들 사이에선 “우리는 광화문까지 걸어갑시다”라는 말이 들렸다.

서울광장을 거쳐 무교동 사거리, 광화문 사거리, 숭례문 앞, 세종문화회관 등지를 돌아봤다. 재야시민단체 관계자들은 물론 어린이들의 손을 잡고 나온 부부, 경남 창원 등 지방에서 단체로 올라온 이들, 대학생들, 연인들, 할아버지들, 장애인들이 발 디딜 틈 없이 도로를 가득 메웠다. 야당들은 다른 곳에서 별도의 집회를 가졌다. 너나 할 것 없이 ‘박근혜 퇴진’ ‘이게 나라냐’ 등의 구호를 외쳤다. 그것도 아주 밝은 표정으로. 외국인들은 흥미로운 듯 이곳저곳을 기웃댔다.

12일 광화문 촛불집회엔 100만명이나 참석했다. 시민들을 불러 모은 장본인은 박근혜 대통령이다.

눈에 띄는 점이 있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대한 분노를 참지 못해 거기로 나온 시민들의 요구가 ‘대통령 퇴진’을 넘어섰다는 게 그것이다. 퇴진은 물론 대통령을 구속해야 한다는 데까지 나가 있었다. “(근혜) 언니, 감옥 가자.” 수의(囚衣)를 입은 대통령의 모습을 봐야 직성이 풀리겠다는 뜻이다. ‘박근혜 지우기’도 진행 중이다. 박근혜정부에서 추진한 주요 정책들을 재검토하거나 폐기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집회 직전까지의 야당 요구보다 강하다.

야당은 성난 민심을 확인한 뒤 강공을 예고하고 있다. 민주당은 정국 불안을 해소하는 유일한 방법은 박 대통령이 국정에서 완전히 손을 떼는 것뿐이라고 못 박았다. 국민의당 역시 ‘STOP 박근혜! 박근혜 OUT!’을 더 크게 외치고 있다.

촛불민심과 야당 움직임을 종합해볼 때 박 대통령의 선택지는 하야, 즉 사임 이외의 곳은 잘 보이지 않는다. 대통령이 현직에 머물러 있는 한 퇴진하라는 촛불은 지속될 것이고, 야당 또한 촛불을 좇아갈 가능성이 많은 탓이다. 그렇지 않아도 대통령의 영(令)이 전혀 서지 않는 상황이다. 사실상 대통령 유고(有故) 상태다.

지금까지 해온 ‘찔끔 조치’로는 해결할 수 없다. 현재로선 야당 일각에서 나오는 이야기가 현실성이 있어 보인다. 박 대통령이 새누리당 탈당과 함께 임기 전에 물러나겠다는 의사를 공표하면서 정치권에 순조로운 정권 이양을 위한 협력을 당부하고, 이를 토대로 정치권이 대통령 권한을 대행할 총리를 뽑고 그 총리가 과도거국내각을 꾸린 뒤 국정을 운영하면서 여야 합의로 조기 대선을 치르는 방안 말이다. 대통령의 사임 발표 시점은 검찰 수사결과 대통령의 불법 사실이 드러난 직후가 괜찮을 것 같다. 물러나라고 해서 떠밀려 물러나면 향후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부담이 될 수 있다. 아울러 대통령 5년 단임제 폐해를 극복하기 위한 개헌이라는 중요 변수가 있지만, 개헌 문제 역시 대통령은 간여하지 말고 정치권과 시민사회에 맡기는 게 옳다.

지난해 ‘정윤회 문건 파동’ 당시 구속됐던 한 경찰관은 우리나라 권력서열 1위가 최순실, 2위가 정윤회, 3위가 박 대통령이라고 진술했다. 그러나 대한민국 최고 권력자는 바로 국민이다. 지극히 평범한 상식을 되새겨야 하는 오늘의 현실, 박 대통령 책임이다.

김진홍 논설실장 jh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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