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박조준 <12> “주한미군 철수 반대” 목사 1000여명과 시위

카터 대통령 특사 한국에 와 면담 제의, 한국 정부도 “미국 가면 말 잘해달라”

[역경의 열매] 박조준 <12> “주한미군 철수 반대” 목사 1000여명과 시위 기사의 사진
1977년 초 서울 충무로교회 성도 등 기독교인들이 ‘주한미군 철수 반대’ 등이 쓰인 팻말을 들고 시가행진을 벌이고 있다. 경향신문·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제공
1977년 초였다. 미국의 지미 카터 대통령이 돌연 주한미군을 철수하겠다고 선언한 것 아닌가. 공산주의를 피해 목숨 걸고 월남한 우리 같은 이들에겐 청천벽력 같은 사건이었다. 교파를 초월해 서울에 있는 목사님들을 1000명 가까이 소집했다. 이어 ‘주한미군 철수 반대’ 성명을 발표하고 교인들을 모아 미국대사관저 앞에서 성명서를 낭독하고 시위에 나섰다. 국내에서 근무하는 외신기자단 앞에서도 같은 성명을 발표했다. 나로서는 평생 ‘데모’라는 걸 그때 처음 경험했다.

당시 집회·시위는 일절 허락되지 않던 때였는데, 경찰은 시위대를 그저 저지하는 시늉만 했다. 이튿날 미국에서 카터 대통령 특사로 파견된 필립 하비브 미국 국무부 차관으로부터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미 대사관저에서 단독 면담을 갖게 됐다.

“박 목사는 조용히 목회만 하시는 분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이번에 맨 앞에 서서 국민들을 선동하십니까.” 그동안 나에 대한 조사를 다했던 모양이다. 내가 대답했다.

“저는 공산주의가 싫어서 월남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미군이 철수하면 우리 남한의 안보는 당장 북한의 위협에 그대로 노출될 수밖에 없습니다. 카터 정부의 도덕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하비브 특사가 다시 입을 열었다.

“박 목사님, 지금 한국군의 군사력은 북한 인민군보다 월등하게 강합니다. 그리고 미군 철수는 점차적으로 진행될 계획입니다. 염려하실 것 없습니다.”

“하비브씨, 나는 정치도 외교도 모르는 성직자입니다. 예를 하나 들어보죠. 당신은 나보다 체구도 크고 힘도 세게 보입니다. 그런데 내가 당신을 이렇게 먼저 한대 치면 당신이 처음에는 맞겠지만 나중에는 당신이 이길 것 아닙니까. 우리가 북한보다 강하다고 하지만 지금은 미군이 주둔하고 있으니 선수를 치지 못할 뿐입니다. 만일 미군이 한국에서 철수하고, 이어 북한이 기회가 왔다고 오판해 다시 남침을 감행하면 그 피해를 상상이나 해보셨습니까. 미안하지만 당신과는 대화가 통하지 않으니 나는 카터 대통령을 만나서 얘기해야겠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어이없을 정도로 대화 아닌 대화를 한 것 같고, 무식하고 경우에 없는 일을 했다. 그러나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미국이 ‘도덕 정치’ ‘피로 맺은 동맹국’이라고 외치면서 미군 철수를 반대하는 우리 국민의 절규를 외면해선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걸 세계에 알리고 싶었다. 물론 우리 정부에선 당시 미국 정부에 대해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처지였기에 힘없는 교회의 외침에 실낱같은 기대를 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총회에서는 미국의 주한미군 철수 선포를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급기야 교단을 대표하는 방미단을 꾸렸다. 전 총회장님들과 신학대학장, 서울여대 학장, 그리고 나까지 포함해 미국연합장로교회(PCUSA) 총회에 참석했다. 그리고 미국 정부를 방문해 국무부 관계자를 만나게 되었다.

우리 정부에서도 다급한 형편이었는지 미국을 방문하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나를 찾아왔다. 정부 입장을 설명하면서 교회를 대표해 미국 정부에 말을 잘해달라는 부탁을 받을 정도였다. PCUSA 총회 본부를 방문했더니 현지 한국인 직원이 마침 교단의 입장문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게 무슨 내용인가.

정리=박재찬 기자 jeep@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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