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유영만] 영혼이 없는 人材는 人災 기사의 사진
진실은 시끄러운 소리를 내지 않는다. 은폐되고 왜곡되는 현장에서 다만 침묵으로 울부짖을 뿐이다. 진실이 밝혀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해질수록 누군가는 배후에서 진실을 간직하고 있는 실세들의 실상을 은폐하거나 조작하는 경우가 있다. 진실함이 동반된 절실함만이 사건의 진실을 밝혀낼 수 있다. 불온한 의도와 의지로 포장된 절실함은 오히려 진실을 왜곡하거나 다른 뜻으로 은폐할 수 있다.

비선실세든 권력집단 실세든 권력의 주변에 포진하고 있는 수많은 전문가가 저마다의 전문성을 활용해 사건의 진상이 밝혀지지 않도록 음모와 협잡을 위한 합동작전을 펼친다. 진실 은폐와 위장에 가담한 실세와 공범자들은 모두 공부를 많이 한 저마다의 전문가다. 하지만 이들이 공부로 축적한 전문성은 사회적 이슈를 해결하거나 공동체 발전을 위한 초석으로 사용되지 않는다. 오히려 개인의 입신양명과 당파적 이익을 위한 수단으로 쓰인다. 나아가 자신보다 못한 위치에 있는 사람을 이용해 옳지 못한 일을 저지르는 범죄도구나 수단으로 활용한다. 이들이 축적한 전문성은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거나 자신의 재능을 기꺼이 공동체의 선을 위해 사용하는 전문성이 아니다.

공부(工夫)는 공부(功扶)다. 있는 힘을 다해 내공을 쌓은 다음 그것으로 남을 도와 성공(成功)하게 만들어주는 미덕이 공부(功扶)의 본질이다. 나름의 노력을 통해 분야별 전문가가 된 인재들은 안타깝게도 개인의 이익과 성공을 위한 출세의 수단으로 공부를 하고 있다. 공부로 쌓은 전문성을 공동체의 선이나 바람직한 목적을 위해 사용하지 않는 지능범죄자들이 늘고 있는 시점에서 우리가 길러내는 인재의 모습에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 우리는 지금 인재(人材)의 위기에 직면해 세상을 주도하는 이들이 많은 어려움과 혼란을 야기하는 인재(人災)를 겪고 있다. 예를 들면 한 우물만 파서 전문가가 됐지만 다른 사람과 소통이 되지 않는 답답한 인재, 매뉴얼에 의존해 일을 처리하다 생각지도 못한 일이 발생하면 속수무책인 멍청한 인재, 전문가로 믿고 따라가 봤지만 무늬만 전문가인 사이비 인재, 그리고 머리는 똑똑하지만 가슴이 따뜻하지 않아 밥맛이 없어지는 재수 없는 인재가 마치 자기 분야 최고 인재인 양 행세하고 있다.

우리가 직면한 인재의 위기 중에서 가장 심각한 위기는 머리는 좋지만 가슴이 따뜻하지 않아서 타인의 아픔에 공감할 수 없는 인재다. 이들은 주로 책상에서 열심히 공부해 엘리트 코스를 밟으며 사회적 지위와 명성을 쌓았다. 하지만 오로지 앞만 보고 달리며 성공과 성취를 위한 야망을 키워왔을 뿐이다. 우리가 경험하는 많은 편리함은 누군가의 힘든 노동 덕분이다. 누군가의 불편함이나 복잡함은 다른 누군가가 대신 해결했을 뿐 불편함이나 복잡성은 사라지지 않는다. 바로 이런 사실에 주목한 사람이 아마존과 야후에서 유저 인터페이스 최고 책임자로 일했던 컴퓨터 과학자 래리 테슬러다. 그는 인간이 경험하는 편리함과 단순함의 실체를 복잡성 보존의 법칙으로 설명하고 있다. 복잡함의 총량은 정해져 있는데, 만약 공급자가 복잡함을 더 짊어지면 그만큼 소비자는 단순함을 즐길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가슴이 따뜻한 인재는 자신의 존재가치를 높여주는 전문성이 남들 덕분에 생긴 사회적 합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전문성으로 누리는 지금의 모든 행복도 보이지 않는 가운데에서 누군가 힘들게 수고해준 덕분이다.

머리는 좋지만 영혼이 없는 인재가 양산되는 이유는 직접 힘든 일을 겪어보면서 타인의 아픔을 온몸으로 체험하는 공부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체험하지 않고도 책상에서 머리로 이해할 수 있지만 체험하지 않고는 타인의 아픔을 가슴으로 공감할 수 없다. 공감 능력은 역지사지를 머리로 생각해서는 생기지 않는다. 내가 직접 타인의 입장이 되어 체험해봐야 그 사람이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를 비로소 가슴으로 이해할 수 있다. 나의 생각과 행동이 상대방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가슴으로 공감하는 능력이 취약한 인재(人材)가 양성될 때 우리 사회는 지금보다 더욱 심각한 인재(人災)에 직면할 수 있다. 난관을 극복할 수 있는 지혜도 책상 전문가의 관념적 지식에서 나오지 않는다. 지난한 고통과 우여곡절로 얼룩진 체험적 지혜를 온몸으로 습득하는 과정에서 인재의 진면목이 드러난다. 진실도 공부도 입으로 말해서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내 몸이 살아온 체험의 흔적을 드러내는 가운데 비로소 그 본질과 정체가 드러난다.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인격적으로 존중해주는 인재는 자신의 전문성을 남을 위해 나누는 자리이타(自利利他)적 사랑의 모델이다.

유영만 한양대 교수 (지식생태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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