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영 칼럼] 이별, 그리고 예의 기사의 사진
이별의 시간이 다가온다. 우리가 뽑았던 대통령과 헤어져야 할 때가 가까워지고 있다. 본인은 죽기보다 인정하기 싫겠지만 현실은 한 치의 틈도 없이 명확하다. 지근거리에서 돕는 몇몇 이외 그의 편은 많지 않아 보인다. 반 토막 난 여당에서는 ‘수동혁명’ 움직임마저 완연하다.

지난 주말 100만명의 함성은 결정적이었다. 광장에서 그는 더 이상 대통령이 아니었다. 발언대에 선 초등학생의 입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조롱거리였다. 운집한 국민들은 ‘박근혜 퇴진’과 함께 ‘박근혜 구속’을 외쳤다. 법조인들은 그의 구체적인 범죄 혐의를 거론한다. 현직 대통령으로서 사상 처음 검찰 조사를 받고나면 ‘최순실 특검’의 칼날이 기다리고 있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4일 전격 제안했던 대통령과의 양자회담에서 기대했던 실낱같은 출구 모색은 코미디처럼 물거품이 됐다.

박 대통령 앞에 놓인 선택지는 단 두 개다. ‘질서 있는 퇴진’을 포함한 하야 또는 탄핵이다. 과정과 시간의 차이는 있지만 결국 물러날 것을 종용받는 처지, 외통수다.

박 대통령에게 용퇴를 바라는 것은 무리일 것 같다. 사촌 형부인 김종필 전 국무총리는 최근 주간지 시사저널 관계자들에게 “(박근혜 대통령은) 하야는 죽어도 하지 않을 것. 국민 5000만명이 달려들어서 내려오라고 해도 거기 앉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연국 청와대 대변인은 15일 “하야와 퇴진을 뺀 모든 조치를 강구하겠다”고 밝혔다.

소아청소년정신과 전문의 서천석씨는 최근 박 대통령에게 리플리 증후군이 보인다는 흥미로운 진단을 했다. 이 증후군은 허구의 세계를 실제로 믿기에 가짜 자기를 진짜 자기로 확신하며 거짓말과 거짓 행동을 반복하는 인격 장애다. 박 대통령은 부모 밑에서는 ‘영애’로 성장했고, 최태민 일가에게서는 ‘대통령감’으로 육성된 후 마침내 대통령 자리에 올랐다. 그의 삶 자체가 권력이다. 현실의 상황이 어떻든 권좌에서 내려오는 일은 있을 수 없고, 절대 있어서도 안 된다는 인식이 몸과 마음을 지배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탄핵인데, 이건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 결과에 상관없이 적어도 몇 개월의 ‘국정 장애’가 불가피하다. 그 과정에서 황교안 국무총리가 국정을 맡는다는 것에 대한 불협화음이 클 수밖에 없다. 국회서 부결되거나 헌법재판소에서 기각되면 감당하기 어려운 후폭풍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국민 대다수의 뜻이 담긴 실체적 정당성을 반영하지 않고 절차적 정당성만 따지다가 초래된 결과라며 국민적 저항운동이 펼쳐질 것이다. ‘민중의 함성이 곧 헌법’이라는 역사적 사실은 1960년 4·19와 87년 6·29에서 이미 경험했다.

언론인 김선주씨는 2007년의 칼럼 ‘이별에도 예의가 필요하다’에서 ‘슬프지만 인정하고 떠날 때를 알아야 한다’고 했다. 그것이 이별에의 예의라고 썼다. 모든 이별은 아프다. 친구와 연인, 부부의 헤어짐은 말할 것도 없고 자신을 그렇게 믿고 따랐던 국민들과의 별리 역시 쓰리지 않겠나. 게다가 퇴진 후에는 끔찍한 현실이 놓여 있다. 상상조차 할 수 없던 절망감과 공포감이 밀려온다.

그러나 다른 방도가 없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만이 그나마 대통령으로서의 마지막 존엄을 유지하는 길이다. 그것이 이별을 맞는 상대에 대한 마지막 예의다.

조언한다. 나는 박 대통령이 기자들 앞에서 물러나겠다고 선언한 후 취임 후 처음으로 이들의 질문을 서슴없이 받고 기탄없이 심경을 털어놓는 모습을 보이면 좋겠다. 기대 난망이겠으나 그것이야말로 헤어지는 순간에 국민에게 바치는 최상급 예의일 것 같다.

정진영 논설위원 jyj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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