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박조준 <13> ‘美장로교회 한국 보고서’ 중립적으로 수정 요청

방미단, 밤 늦도록 한국 상황 설명 ‘주한미군 철수 재고해야’로 제출

[역경의 열매] 박조준 <13> ‘美장로교회 한국 보고서’ 중립적으로 수정 요청 기사의 사진
영락교회 담임 시절, 서울 강북구 수유리 북한산 자락에 있는 영락기도원에서 청년회원들과 함께 묘목을 심고 있는 필자.
미국연합장로교회(PCUSA)는 ‘주한미군의 철수는 타당하다’는 내용으로 입장을 정리하려던 참이었다. 예컨대 ‘민족적 민주주의는 독재정권의 슬로건’이라고 해석하면서 ‘한국에서 비민주주의적 행위가 자행되고 있기에 미군이 남한에서 철수하는 것은 옳은 결정’이라는 논리였다. 우리 방미 대표단 입장과 동떨어진 내용이었다.

상황이 긴박해진 우리는 PCUSA 총회 산하 ‘교회와 사회분과위원회’를 통해 한국과 한국교회의 입장을 밤늦게까지 설명했다. 그 당시 PCUSA 측은 ‘한국의 군사독재 정부가 교회를 핍박해 젊은이들이 교회에 모이지 못한다. 그래서 아무런 활동도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알고 있었다.

나는 내가 섬기고 있는 교회의 실정을 예를 들어 설명했다. “한국이 군사정권 하에서 여러 문제를 안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한국 속담에 ‘독안에 든 쥐 잡으려다 장독 깨뜨린다’는 말이 있습니다. 군사정권을 정신 차리게 만든답시고 ‘주한미군 철수’로 북한이 오판하게 할 수는 없습니다. 내가 섬기는 교회에서 수천 명의 젊은이들이 아무런 구애를 받지 않고 종교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종교 활동에 박해를 받고 있다는 정보는 사실과 다릅니다. 내가 그 증인입니다.”

이 같은 설명에 PCUSA 측은 수긍하고 입장문 문장을 바꿨다. 주한미군철수는 정당한 시책이라 옹호했던 문장에서 ‘주한 미군을 철수하겠다는 정부의 시책은 재고해야 한다’로 고쳐져 미국 행정부에 제출됐다.

꼭 그렇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미국 행정부는 국방이나 외교안보 등 중대한 정책 결정에서 PCUSA의 의견을 많이 참고하는 편이었다. 결국 카터 대통령은 주한미군을 철수시키겠다는 생각을 바꾸게 됐다.

박정희 정권이 나라 기강을 세우고 경제 발전에 기여한 점은 인정한다. 하지만 유신정권만 꿈꾸지 않았어도 비극은 없었을텐데, 두고두고 아쉬울 따름이다. 사람이면 누구나 욕심이 있다. 특히 권력욕은 사람을 미치게 만들 수 있는 무서운 요소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각별히 조심하지 않으면 누구나 범할 수 있는 유혹이 아닐 수 없다.

우리나라의 정권들을 되돌아보면 제각각 모양은 다르지만 권력의 유혹이 강하게 역사한 것을 볼 수 있다. 교회가 직접 정치 활동을 해야 할 것은 아니다. 하지만 선지자적 입장에서 국가의 지도자가 나아갈 방향을 주시하고 바른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 특히 교회가 정권에 아부하는 것은 사명을 망각하는 일이다.

박정희 대통령이 가장 신임하는 사람들 가운데 차지철 경호실장이 있었다. 그가 대통령 경호실장으로 있으면서 “월요일 업무를 시작하기 전에 경호실 참모들에게 30분 정도 좋은 말씀을 전해 달라”는 부탁을 해서 설교한 적이 있다. 그런데 내가 보고 느낀 바로는 박정희 대통령이 차 실장을 너무 신임하는 것 같았다. 그러다보니 경호 업무 영역을 넘어 청와대 안팎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데 대한 부작용이 컸던 것 같다. 당시 청와대에선 차 실장을 통하지 않고는 아무 일도 할 수 없다는 얘기까지 흘러 나왔다.

대통령 직속인 중앙정보부장(현 국가정보원장)이라도 차 실장을 거쳐야 했다니, 지금 벌어지고 있는 시국 상황과 오버랩 되는 것 같아 씁쓸하다. 이런 저런 연유에서 김재규 당시 중앙정보부장이 대통령과 경호실장을 살해하는 일이 빚어진 게 아닌가 싶다.

정리=박재찬 기자 jeep@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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