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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의 열매] 박조준 <14> ‘오갈 곳 없던 차지철’ 영락교회 묘지에 안장

차 실장 적을 둔 교회서 장례식 거부, 내가 장례 집전… 권력 무상 깨달아

[역경의 열매] 박조준 <14> ‘오갈 곳 없던 차지철’ 영락교회 묘지에 안장 기사의 사진
1979년 11월 3일 옛 광화문 터의 중앙청 광장에서 진행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영결식 장면. 필자로서는 권력의 무상함을 깊이 되새기는 사건이었다.
1979년 10월 26일 저녁 7시 40분쯤 서울 종로구 궁정동 중앙정보부 안가에서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박정희 대통령을 살해한 사건이 발생했다. 차지철 대통령 경호실장도 저격당해 사망했다. 역사의 비극을 접하는 순간이었다.

한경직 원로목사님과 함께 청와대에 조문을 다녀왔더니 박 대통령 장례는 국장(國葬)으로 치를 것이란 소식이 들렸다. 차 실장은 기독교 예배 형식으로 치르려 하는데 교회 성가대 100명만 보내줄 수 있느냐는 요청이 청와대로부터 왔다. 그리고 나서 30분 후에 연락이 재차 오기를 당초 인원의 절반인 50명만 보내 달라고 해서 알겠다고 했다.

그런데 30분 후에 또 다시 연락이 와 20명 정도면 충분하다고 했다. 한참 후에 다시 연락이 왔다. “차 실장의 장례는 청와대에서 관여하지 않게 됐으니 교회에서 알아서 하시오.”

사실 차 실장은 우리 교회와 관계가 없는 사람이었다. 그가 적을 둔 교회에서는 장례식을 할 수 없다고 했다. 우리 교회에서 긴급 당회를 소집했다. 논의 끝에 모실 곳이 없게 된 그분을 영락교회 묘지에 안장하기로 결정했다. 나는 그때 절실하게 느낀 바가 있다. 권력의 무상함을!

교회 허락 하에 우리 교회에서 차 실장의 장례 예배를 드렸다. 내가 집례를 맡았는데, 전후 사정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많은 오해를 사기도 했다. 변명할 마음은 없지만 나는 오늘날까지 정부 편이 되어본 적이 없다. 그저 ‘하나님의 종’ 입장에 서서 옳은 것은 옳다 하고, 그른 것은 그르다 한 것 뿐이다.

박정희 정권 때도 마찬가지였다. 대통령을 한 것까지는 좋았다. 그런데 국가가 안정되고나서 군에 복귀하겠다던 분이 유신정권을 계획하고 추진한다는 것은 국민을 우롱하는 처사라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런 일이 있고나서 얼마 지나서였을까. 당시 공화당 사무총장이던 분이 어느 날 내게 귀띔을 해주셨다.

당 간부회의 때 어떤 인사가 “영락교회 젊은 목사가 반정부적인 발언을 아주 강하게 하는데 한번 손볼까요”라고 말했단다. 그때 그 얘기를 듣고 있던 박 대통령은 “그런 사람도 있어야 돼”라며 말렸다고 전해 들었다. 아마 나더러 조심하라는 경고였다고 생각한다.

목회자는 여당도 야당도 누구편이 돼선 안된다. 오직 하나님 편에 서서, 하나님을 대신해서 이 백성을 깨우치는 시대의 파수꾼으로 외쳐야 한다. 외치지 않아 잘못되면 그 책임은 목회자에게 있다.

박정희 대통령이 시해당한 뒤 뜻밖의 일이 일어났다. 일선을 지키던 현직의 육군 소장이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하게 됐다. 나는 이 사실을 당시 합참의장으로 계시던 분의 초청으로 그의 공관에서 저녁식사를 함께 하던 중 들었다. 합참의장이 우리 교회 집사님이셨는데 군부의 정권 장악을 이렇게 미화하는 게 아닌가.

“목사님, 우리나라는 기도하는 성도님들이 많아서 하나님이 지켜주셨습니다. 북한 김일성의 눈을 하나님이 보이지 않게 해주셨으니 망정이지, 만일 김일성이 이 사실을 알았으면 우리 서울은 두 시간 안에 완전히 점령당할 뻔 했습니다.”

내 마음이 좁아서 그런지 몰라도 그분 얘기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니 동의할 수가 없었다. 마음이 착잡했다.

정리=박재찬 기자 jeep@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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