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남도영] 대통령 청문회가 필요하다 기사의 사진
청와대는 취재가 어려운 곳이다. 박근혜 청와대는 정도가 심했다. 청와대 출입기자들은 “취재가 안 된다”고 푸념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엄살이 아니라 정말 취재가 안 됐던 듯하다. 물어봐도 아는 비서들이 별로 없었다. “도대체 할 일이 없다”며 청와대를 그만둔 비서관 얘기도 전설처럼 들렸다. 대통령의 심경을 알 만한 비서들, 문고리 3인방은 철저히 입을 닫았다. 여성인 박 대통령 특유의 폐쇄적 스타일인 줄 알았다. 그리고 최순실 사태가 터졌다.

역설적이게도 최순실 사태 이후 그토록 취재가 어렵던 대통령 심경이 조금씩 흘러나온다. 차단막을 쳤던 비서진이 물러나니 조금씩 정보가 나오는 측면도 있고, 민심이 워낙 흉흉하니 어쩔 수 없이 대통령의 심기와 근황이 노출되는 탓도 있다. 조각을 맞춰 보니 대통령의 인식은 국민의 인식과는 많이 다른 것 같다. 최순실에 대한 배신감이 큰 모양이다. 40여년간 자신을 돌봤던 집사였는데, ‘그토록 나쁜 짓을 많이 했다니…’라는 배신감이라고 한다. 하야나 퇴진은 고려 대상 항목에 없다. 여전히 박 대통령이 이번 사태를 어떻게 인식하고 풀어 나가려는지는 불투명하다. 대통령 심중을 읽을 만한 소수의 측근은 모두 검찰청사로 떠났고, 새로 들어간 참모들은 이를 제대로 물어보기 힘들다. “5000만 국민이 내려오라고 해도 거기 앉아 있을 것”이라는 김종필 전 국무총리의 발언이 현재까지 나온 가장 정확한 분석일지 모른다.

최순실과 관련자들에 대한 검찰 수사가 대통령 조사라는 마지막 단계를 앞두고 있다. 어쨌든 검찰은 대통령을 조사할 것이고, 이달 하순 출범하는 특검도 대통령을 조사할 것이다. 그러나 검찰·특검 수사가 본질적인 의문을 해소하지는 못할 것이다. 기본적으로 검찰 수사는 불법 여부를 따지기 때문이다. 검찰 수사는 부정한 돈을 받았는지, 국가기밀을 누설했는지, 기업에 압력을 행사했는지를 따진다.

대통령 측근 비리와 국정농단은 사실 처음이 아니다. 국민들도 집권 후반기 터져 나오는 권력형 비리에 면역이 생긴 상태다. 역대 대통령들의 친인척과 측근들이 갖은 비리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았지만, 국민들이 광화문으로 나오지는 않았다. 박 대통령의 불법 행위를 가리는 것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있어서다.

국민들은 좀 더 근본적인 부분에 분노하고 있다. 대통령의 판단력, 정책적 결정 과정, 국가운영의 합리성 같은 것들이다. 대통령이 아닌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본질적인 것들이다. 대통령이 매일 매순간 내려야 할 엄청난 판단들, 예를 들면 세월호 참사 당시 판단과 지시 같은 것들이다. 박 대통령은 이런 결정과 판단을 최순실에게 의지했다는 의혹에 휩싸여 있고, 국민은 이런 의혹을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대통령의 판단과 결정, 정신적인 문제를 수사로 해결할 수는 없다.

이는 박 대통령이 직접 답해야 할 사안이다. 얼마 전 국회는 최순실 국정조사에 합의했다. 박 대통령은 국정조사 청문회에 출석해 국민이 분노한 모든 것을 상세하게 증언할 필요가 있다. 형식은 아무래도 좋다. 청문회도 좋고 국민과의 대화도 괜찮겠다. 이 나라의 주인인 국민은 대통령이 수많은 결정을 어떻게 내렸으며, 최순실과의 관계는 무엇이고, 나라를 어떤 원칙과 절차로 운영했는지 따져 물을 권리가 있다. 당연히 대통령은 성실히 답할 의무가 있다. 헌법 81조는 대통령이 국회에 출석해 발언할 수 있다고 규정돼 있다. 밤을 새워서라도 대통령은 자신의 언어로 국민에게 의혹을 해명해야 한다. 돌아보니 국민은 박 대통령 심경을 제대로 들어본 적이 없다. 최순실 사태는 수사로 끝낼 사안도 아니고, 탄핵·하야·질서 있는 퇴진 같은 정국 시나리오에 묻힐 사안도 아니다. 청문회 시간은 제한이 없어야 하고 생중계가 좋겠다.

남도영 정치부장 dynam@kmib.co.kr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