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 뉴스] 차벽 너머… 불통의 벽 기사의 사진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촉구하는 100만 촛불집회 행렬이 12일 서울 세종로, 태평로 일대를 가득 메웠다. 이날 밤 청와대는 촛불의 함성이 들리는 어둠 속에 홀로 서 있었다.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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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거름조차 다 야윈 밤. 종이컵에 초를 켠 200여명의 시민이 서울 청운동 새마을금고 앞에 모였습니다. 사람들은 어둠 속에서 서로의 초에 불을 옮기며 “박근혜 하야. 박근혜 구속”이란 구호를 외쳤습니다. 소리와 빛이 넘실거리는 이곳과 달리 차벽 사이로 보이는 청와대 입구에는 캄캄한 암흑만 깊었습니다. 블랙홀이라도 자리한 듯 모든 함성과 불빛이 청와대 입구에서 사그라졌습니다. 함께 있던 더불어민주당 당직자는 “구호가 들릴까?”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는 청와대를 바라보며 고개를 내저었습니다.

이곳은 청와대에서 불과 300m 떨어진 청운동사거리. 차벽만 넘으면 청와대 서쪽 출입구가 나옵니다. 과거 어떤 경우에도 집회가 허가되지 않았던 ‘청와대 최전방’ 지역에 처음 집회가 허용됐습니다. 지난 12일 밤 9시 100만 촛불집회의 최전선에서 민주당 당직자와 야당 말단 기자는 나란히 앉아 시민의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바리케이드 너머 무궁화동산

“조금도 나아진 것 같지 않아.” 차벽에 가로막혀 청와대를 볼 수조차 없는 시민을 바라보며 한 민주당 당직자가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만리장성처럼 견고하게 이어붙인 경찰버스 너머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피살당한 옛 궁정동 안가(안전가옥) 자리가 있었습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1993년 청와대와 붙어있는 안가를 허물고 ‘무궁화동산’을 조성했습니다. 푯말에는 “어려웠던 민주화의 길을 되돌아보는 역사의 배움터로 사랑받기를 바란다”고 적혀 있었습니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고 노래하는 시민들은 경찰의 바리케이드에 가로막혀 ‘민주화의 배움터’인 무궁화동산에 갈 수 없었습니다. 동산은 박 대통령에 의해 다시 박 전 대통령의 안가처럼 폐쇄됐습니다. 조금도 나아진 것 같지 않다는 민주당 당직자의 헛헛한 말이 빈 하늘에 조용히 걸렸습니다.

소설 ‘반지의 제왕’에서 골룸은 마법의 반지를 “마이 프레셔스(My precious)”라고 부르며 홀로 독차지하려다 괴물이 됐습니다. 반면 프로도는 너무나 갖고 싶다는 유혹에도 불구하고 반지를 버려서 오히려 영웅이 됐습니다. 모든 권력을 한 손에 쥐려 재벌에 돈을 요구하고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까지 만든 박근혜정부는 그렇게 허물어지고 있었습니다. 촛불집회에서 만난 한 영화전문기자는 ‘와호장룡’의 명대사를 나지막하게 읊조렸습니다. “주먹을 쥐면 그 안에 아무것도 없지만 주먹을 펴면 그 안에 모든 게 있다.” 움켜쥔 박 대통령의 주먹 사이로 그렇게 애지중지한 권력이 모래처럼 흘러내렸습니다.

게걸음으로 개구멍을 지나

민주주의로 가는 길은 좁고 험난했습니다. 광화문광장에서 청와대 서쪽 입구까지 가기 위해서는 서울지방경찰청을 지나 사직단에서 비좁은 서촌 먹자골목으로 파고들어야만 했습니다. 노란 마스크를 한 세월호 추모 일행과 교회 깃발을 든 교인들, 교복을 입은 고등학생들은 몸을 틀어 게걸음으로 간신히 건물과 건물 사이의 틈을 통과했습니다. 그렇게 골목을 헤매다 도착한 통인시장에서 북쪽으로 조금만 더 나아가면 경찰이 허가한 촛불집회의 마지노선, 청운동사거리가 나옵니다. 촛불을 든 200여명의 사람들은 자그마한 새마을금고 앞에 삼삼오오 모여 하야 구호를 내질렀습니다. 시민들을 가로막은 차벽 위에는 경찰 10여명이 미동 없이 서 있었습니다. 그 뒤로 푸른빛을 잃은 청와대가 어둠에 잠겨 있었습니다.

시민들이 대통령 하야를 외치는 ‘일탈’ 상황 속에서도 ‘일상’은 견고했습니다. 바리케이드 너머 청운동사거리 북쪽에 사는 한 중년 아저씨는 차벽으로 인해 집에 갈 수 없게 되자 “내가 내 집에도 못 가느냐”며 경찰버스를 한참 두드렸습니다. 흰색 비닐봉투 가득 장을 보고 집으로 돌아가던 아주머니는 주민등록증을 꺼내 경찰에게 보여주며 길을 터달라고 항의했습니다. 결국 경찰은 맞붙은 버스 2대를 살짝 떼어내 한 사람만 지날 수 있는 길을 만들었습니다. 귀가하던 다른 중년 남성은 “내가 개도 아니고 개구멍으로 집에 가야 하느냐”고 투덜댔습니다. 단지 귀갓길이 청와대 근처라는 이유만으로 사람들은 신분증을 내밀고 게걸음으로 개구멍 같은 차벽 틈을 지나야만 했습니다. 최순실씨는 확인 작업도 없이 마음대로 청와대를 드나들었다는데 시민들은 제집 하나 찾아가는 것조차 쉽지 않았습니다.

돌아가는 길, 되돌리는 일

시민들이 분에 못 이겨 빈 벽에다 구호를 외쳤지만 돌아오는 것은 묵묵부답이었습니다. 여전히 박 대통령은 견고한 차벽 뒤에서 안온한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김수영 시인이 썼듯 “밤새도록 고인 가슴의 가래라도 마음껏 뱉자”는 심정으로 그저 피켓을 들고 하릴없이 함성을 질렀습니다.

오후 10시, 돌아가기 위해 경복궁역 쪽으로 내려가는데 “저기 손학규 아니야?” 민주당 당직자가 뜨악한 목소리로 스쳐간 사람을 가리켰습니다. 돌아보니 정말로 얼마 전 탈당한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였습니다. 그는 검은 외투를 입고 아내와 멀찍이 떨어져 휘적휘적 청운동사거리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었습니다. 항상 지지자들과 취재진에 둘러싸여 있는 모습만 봤던 터라 골목길을 걷는 소박한 모습이 낯설었습니다. 손 전 대표도 집이 청운동 북쪽 구기동인지라 어쩔 수 없이 차벽 앞에서 걸음을 멈췄습니다. 야권의 지도자 또한 불통의 바리케이드 앞에서는 어찌할 도리가 없었습니다.

다시 광화문광장에 도착했을 땐 가수 이승환의 무대가 끝난 뒤였습니다. 먼저 일어난 국민의당 안철수 전 대표는 광화문역 지하보도에서 시민들에게 둘러싸여 함께 사진을 찍고 있었습니다. KT빌딩 앞은 박원순 서울시장을 보기 위해 몰려든 인파로 인해 옴짝달싹도 할 수 없었습니다. 야당의 한 최고위원은 우연히 그 곁을 지나다가 박 시장 사진을 찍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 사이에 갇히기도 했습니다.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촛불을 들고 있던 문재인 전 대표 역시 사람들의 환호성 속에서 플래시 세례를 받았습니다. 인산인해 속에서 민주당 김부겸 의원이 보좌직원을 잃어버리는 황당한 상황도 생겼습니다.

엄중한 시국에 시민들이 야당 정치인을 응원한 이유는 이 모든 비정상을 되돌리는 일이 야당의 임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되돌리는 일에 대해 생각해보았습니다. 시민들이 차벽을 넘어 청와대로 향하는 방법은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힘으로 경찰버스를 넘어뜨리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제도와 정치의 영역에서 청와대를 밖으로 불러내는 것입니다. 시민들은 경찰버스를 넘어뜨리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이제 남은 선택지는 하나입니다. 제도와 정치의 영역에서 야당이 주도권을 쥐고 권부의 핵심에서 벌어진 비위사실을 밝혀내는지 국민들이 지켜보고 있습니다. 야당 정치인을 향한 환호성이 무겁게 들리는 이유입니다.

글=고승혁 기자 marquez@kmib.co.kr, 그래픽=공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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